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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그 숲에 가면

 

나무가 꽃을 꺼내기 시작했다. 햇살의 펌프질에 물길을 내고 꽃을 터트렸다. 아랫녘은 산수유와 매화 등 봄을 끌어낸 봄꽃들의 축제가 시작됐다. 봄이 꽃을 꺼내는지 꽃이 봄을 불러들였는지 따질 필요는 없지만 꽃의 계절이 되었다.

나무의 단단한 각질 속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어 꽃을 꺼내고 잎을 만들고 열매를 맺을까하는 원초적 상상이 으적거린다. 그 꽃들 나비와 벌을 불러들여 초례청을 차리고 여름한철 그늘을 만들며 단풍을 빗어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나무의 지혜를 닮고 싶음일까.

숲에 들면 그들의 질서가 눈부시다. 나무는 서로 닿지 않을 만큼의 간격으로 몸통을 넓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가 빼곡하면 하늘로 올라서고 주변이 넉넉하면 옆으로 품을 늘리며 서로의 생존을 도우며 공존한다.

전나무 숲에 들면 나무의 질서를 확연히 볼 수 있다. 울울창창한 숲에서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의 상쾌한 기운을 받게 된다. 쭉쭉 뻗은 줄기와 뾰족한 잎들이 허공을 깁고 바람을 기우며 숲을 이룩하고 있다. 전나무에는 특별한 애정이 있다. 아버지의 나무이기도 하고 우리들 나무이기도 하다. 땅 한 뙈기 없던 아버지는 소를 팔고 곡식까지 탈탈 털어 산을 장만했다. 산에 밭을 일구고 한 자락에 전나무를 심었다. 헐렁하던 산이 차츰 푸르게 변해갔고 아버지의 정성을 아는지 나무는 쑥쑥 자랐다.

키 재기하며 놀던 나무는 우리를 따돌리고, 언제부턴가 올려다보게 되었고 그늘을 내어주었다. 나무가 커지자 우리는 각자의 나무를 정하고 나무에 이름표를 붙였다. 아버지도 동생이 생길 때마다 나무를 심었고 전나무는 살림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외양간에 큰 불이 났을 때도, 사랑채를 지을 때도 아버지를 직접 키운 전나무로 대들보를 세웠다.

우리는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랐다.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나무껍질을 벗겨 피리를 만들기도 하고 가을이 되어 누런 잎들을 쏟아내면 갈키로 벅벅 긁어 아궁이 불쏘시개로 사용하곤 했다.

숲과 우리는 한통속이었다. 서로의 나무가 더 크다고 우기기도 하고 두 팔로 껴안아 보며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고 느꼈던 그 나무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버지 무덤가에 서 있다. 무덤을 둘러 싼 나무는 아름드리가 되었다. 무덤에 그늘이 져서 잔디가 죽는다고 나무를 베어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누구도 응하지 않았다. 전나무가 아버지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무를 보면 지게 가득 짐을 지고 비탈길을 아슬아슬 내려오던 아버지의 헛기침이 들리는 것 같다. 지개작대기를 옮겨놓을 때마다 후들대던 아버지의 온 몸을 짓눌렀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온갖 고생 끝에 형편이 낳아지고 이제 좀 편히 사셔도 될 쯤 아버지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지만 숲은 거대해졌다. 아버지 하고 목청 돋워 부르면 메아리를 타고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숲이 우거져 멧돼지가 길을 내고 멧돼지가 낸 길을 따라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오가기도 하지만 이맘쯤이면 전나무에도 물이 올랐을 것이다. 지난계절을 넘기면서 허공을 좁혔을 나무, 눈을 틔우고 침엽의 바늘을 꺼내 세월을 깁고 그리움을 기울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꽃구경을 나서본 기억은 없지만 분명 꽃 속에, 아름드리나무에 아버지가 있다. 먼 산처럼 다가와 그늘이 되기도 하고 환하게 피어 간절함이 되기도 한다. 이번 한식 땐 아버지 거처에 잔디 몇 덩이 더 얹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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