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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옹성(甕城)

 

수원화성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시설은 옹성(甕城)이 된다. 우리나라 성곽에 옹성이 있는 곳은 여러 곳이지만, 벽돌로 된 곳은 수원이 유일하다.

성곽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나무로 만든 성문이다. 불에 약한 목재 문을 보호하기 위해 문짝에 철갑을 입히고 외부에는 작은 성곽인 옹성을 만들어 본성(本城)에 붙이기도 한다. 옹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만들어졌고 다양한 평면과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평면은 원형이 많으나 일부는 사각 형태도 있다. 옹성곽(甕城郭)은 주로 한 겹이지만, 2겹, 3겹으로 된 것도 있고 출입구의 위치도 다양하다.

유럽에서는 옹성을 바비칸(Barbakane, 작은 요새)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우리와 같이 옹성(瓮城, Urn Castle)이라고 부른다.

한반도 옹성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유적에서는 옹성이 보이지 않고 고구려 산성(오녀산성 동문지, 국내성, 패왕조산성)에만 찾아 볼 수 있다. 아마 옹성 제도가 일찍 시행된 중국 영향권에 속한 이유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인종1년(1123)에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옹성의 기록이 있다. ‘개성의 서문인 선의문(宣義門)이 왕성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옹성이 있다. 동문인 광화문은 선의문과 제도가 같으나 다른 점은 옹성이 없다’라고 쓰여 있다. 또 서긍은 ‘선의문이 다른 문보다 특별하게 크고 화려하며 옹성이 있는 이유는 임금이나 중국의 사신이 이용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생각을 적고 있다.

고려도경의 내용대로 한다면 고려 중기 개성도성의 대문 중 서문에만 옹성이 있었다는 뜻으로 당시 흔한 시설이 아니었다는 것이 된다.

조선 전기에도 역시 옹성이 보편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1939년 한양도성을 처음 건축할 당시 동대문(흥인지문)를 포함한 4대문 모두 옹성 없이 만들어졌다. 대문에만 옹성이 만들어지게 된 건 1396년 7월 초 폭우와 홍수로 인해 남쪽에 연접해 있는 수문(오간수문, 당시 작았음)의 옹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당시 축성방식은 대문에 옹성을 설치하지 않고 곡성(曲城, 대문 좌우의 성곽을 치성처럼 밖으로 빼서 만드는 성)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동대문은 남쪽 청계천이 연접해 있어 수문(水門)과 그 앞에 옹성을 만들어야 했다. 바로 옹성이 동대문의 곡성 역할을 하여 동대문의 남쪽에는 따로 곡성을 만들지 않았다. 수문 옹성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폭우로 인해 옹성의 2칸이 무너져 복원을 생각했으나 또 홍수로 인해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해에 곡성이 없는 동대문에 옹성을 추가하게 된다.

태조 이후에 국방관계자들은 다른 대문에도 옹성을 추가 설치하자는 건의를 계속한다. 하지만, 임금은 ‘기술이 부족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니 풍년이 들면 만들자’라며 미룬다.

옹성 축조 반대 의견 중에는 성종 10년(1479) 좌승지 김승경의 ‘중국의 역참은 모두 옹성이 있지만, 숭례문은 중국사신이 출입하는 곳이니 옹성을 쌓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것도 있다. 전쟁의 필수 시설이 사대주의 사상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이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로 성곽정비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옹성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 중 수원화성은 경제적 정치적 안정기에 절대권력자의 무한한 지원으로 최고시스템을 갖춘 성곽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약용을 투입하여 질 높은 설계가 사전에 진행된다. 이때 설계와 관련하여 성설(城設, 정약용)과 성제고(城制考, 공사관계자 들이 자료를 모아 만든 책)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준비하여 수원화성을 만드나 공사과정에서 설계변경이 여러 번 이루어져 4개의 옹성도 각기 다른 특징을 갖게 된다. 북옹성(北甕城)보다 늦게 만들어진 남옹성이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고 가장 나중에 만든 동서대문의 옹성은 더 합리적인 시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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