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의 世上萬事]주례를 선다는 것
[이준구의 世上萬事]주례를 선다는 것
  • 경기신문
  • 승인 2018.04.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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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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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자(大記者)

지난 주말 천안에서 고교 동창생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몇 해 전 얼떨결에 어설프게 주례로 데뷔(?)한 이래 벌써 열 번째였다. 다섯 번은 친구의 아들 딸들이고 나머지는 지인들이다. 첫 주례는 친구가 운영하는 인쇄소의 직원이었다. 친구가 부탁을 하기에 ‘60도 안 된 나이에 내가 무슨 주례냐’고 펄쩍 뛰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 결혼식이 있는 한달 동안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강단에는 서봤지만 주례는 처음이라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었다. 예식장에 수 없이 다니면서도 주례사를 듣기는커녕 축의금만 내밀고 밥 먹으러 가기에 바빴다. 예식 진행절차 등 소소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 중에서도 주례로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주례를 여러 번 서 본 적이 있는 선배에게 자문도 구해봤다. 대부분 사람들이 짧게 하라, 재밌게 하라, 고리타분한 얘기 하지 마라 등등의 주문을 한다. 이혼경력의 가수 조영남씨가 개그맨 현철의 결혼식에서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거나,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께서 “너를 보니 네 아비 생각이 난다. 부디 잘 살아라”라며 가장 짧은 주례사를 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해학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결혼의 당사자가 아닌 하객들에게는 10분도 채 안 되는 주례사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짧게도 해봤다. 그러나 뭔가 없어 보였다. 축복된 자리에 ‘객(客)들의 기대에만 부응하여’ 너무 대충 한 것 같아 결혼식이 끝나고서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밌게 한다는 것도 그렇다. 얼마든지 웃길 수는 있지만 무슨 연예인이나 코미디언들의 결혼식도 아닐진대 그것도 예의가 아니다. 결혼식은 아름다운 축복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양가가 혼인의 예를 갖추는 어느 정도 엄숙함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의 감동적이라는 주례사도 읽어보았지만 그건 극히 일반적인 신랑신부들에게 전하는 얘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뾰족한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양측 부모나 신랑신부의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주례사는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례부탁을 받으면 혼주들에게 꼼꼼이 취재(?)에 들어간다. 때로는 신랑신부에게 직접 전화도 해본다. 가풍과 인품 그리고 자녀들의 성장과정, 또 어떻게 만나 교제해왔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일본말을 써서 안 됐지만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야마(山)’를 잡는다고 한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신참 기자들이 기사를 데스크(부장)에게 내밀면 “야! 이 기사의 야마가 뭐야?”라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신랑신부의 주변 취재(?)를 통해 무슨 말을 해 주어야 좋을지 ‘야마(山)’를 잡아 나름대로 ‘맞춤형 주례사’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신랑 신부에게 과연 축복의 주례사가 될까, 양가가 혼인의 예를 맺는 자리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초안을 잡고 고쳐 쓰기를 거듭하지만 결혼식 순간까지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전전긍긍한다. 즉석에서 원고에 없는 애드리브를 하기도 한다. 이번 결혼식에는 수원 서울은 물론 부산 울산 대구 포항 거제도 심지어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도 있었다. 보통 20명 정도면 친구들이 많이 온 건데 마치 동창회를 하듯 40명이나 몰려왔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를 보면 신랑신부 부모님의 인품과 인간관계를 알 수 있다, 그 아래서 가정교육을 받은 자녀들이니 인품이 훌륭할 것이다”라며 당초 원고에 없는 말을 그때 상황에 따라 하기도 했다.

주례 열 번이면 원고를 안 보고 할 정도로 꽤나 익숙해졌지만 늘 긴장한다. 결혼식 날까지 마치 신랑신부나 혼주처럼 아무 탈이 없도록 매사에 조심도 해야 한다. 사생활에 흠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넘은 나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주례는 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힘들다. 그러나 한 가정이 아름답게 탄생하는 축복된 자리에 증인이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주례를 설 때마다 ‘내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면서도 회갑의 나이에 인생의 긴 배낭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에게 소중한 나침반을 한 개씩 선물하는 것 같아 늘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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