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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주검위리(鑄劍爲犁)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 대한 공포는 변함이 없다. 승패를 따질 것 없이 수많은 생명이 숨지는 혹독한 피의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행사는 매우 각별 했다.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며 무기를 부수고 녹이는 것으로 평화를 다짐한 게 대표적이다.

역사도 오래 됐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엔 이를 ‘주검위리(鑄劍爲犁) 마방남산(馬放南山)’이라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나오는 말로써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 말을 남산에 풀다’라는 뜻이다. 전쟁을 끝내고 민생에 힘쓴 다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추수 후 창과 화살촉, 칼 등을 녹이며 부족 간 평화를 약속하는 의식을 가졌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전통 덕분에 인디언들이 오래 공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구약 성경에는 더욱 구체적인 구절이 있다. 미가서 4장3절과 이사야서 2장4절에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는 내용이 있어서다. 기록된 시기가 기원전을 감안하면 주검위리의 유구함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다. 1991년 7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략무기감축협정식을 가졌다. 두 정상은 당시 중거리탄도미사일의 탄두를 녹여 만든 펜으로 이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냉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64년부터 52년 동안에 사망 25만명, 실종 5만명, 난민 800만명을 낸 콜롬비아 내전을 종식시키는 평화 협정식은 더욱 극적이었다.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가 총알과 탄피로 만든 펜으로 공식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군들을 처벌하지 않고 포용하겠다는 평화협정은, 안타깝게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그래도 산토스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주검위리의 뜻을 빛냈다.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이 지났다. 판문점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총칼로 대치해 있는 가운데 협정 서명식이 거행된 곳이다. 내일 여기서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잘 성사돼 다음 만남에는, 남·북 미사일을 녹여 만든 펜으로 서명하는 평화 협정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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