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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모네의 연못

 

가로가 170미터, 세로가 40미터에 이른다는 대형 수조 안에서 1/25 크기로 압축된 세월호 모형이 거듭 미끄러지듯 돌면서 기우는 장면을 보았다. 물은 그 귀한 생명그릇을 전혀 받치지 못하고 힘없이 놓쳐버렸지만, 그 품에 놀라운 진리를 지니고 있었다.

1899년 예순에 접어 든 모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지베르니의 집 안에 꾸며놓은 연못에서 무언가 강렬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년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연못을 꾸민지는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당시 가진 것에서 땅을 좀 더 구입해 구덩이를 파고 물을 채웠으며, 멋드러진 일본식 다리도 놓았다. 온갖 이국적인 아름다운 식물들을 심었고, 연못에는 물론 수련을 심어놓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그가 심고 가꾼 식물들은 왕성하게 자랐고 연못은 완벽한 작은 세계로 거듭났다. 그러자 연못 앞에서의 평안한 노후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모네는 안절부절 해야 했다. 결국 그는 이 작은 세계 속에 파묻혀 말년을 보내고 만다. 작품을 위해 간혹 센 강이나 런던을 몇 달씩 다녀오기도 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지베르니의 연못 앞에 앉아 수련 작업에 열중했다. 물이 보내오는 신호는 매순간 그를 강렬하게 사로잡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내가 이 작업에 너무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저도 압니다. 연못과 그곳에 비친 풍경은 이제 집착이 되었습니다. 늙은 나에게는 힘이 부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지금 강렬하게 느끼는 이것을 꼭 그리고 싶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 힘은 서서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뭔가를 이루기를 바라면서 다시 시작할 뿐입니다.”

운 좋게도 작가로서의 성공이 진작부터 찾아왔었기에 모네는 모든 곁가지를 떨어내고 오직 본질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한때 그의 그림 속에는 한껏 멋을 낸 카미유와 신사들이 등장하곤 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인물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제 풍경과 자연이 선사하는 영감을 좇을 뿐이었다. 다행이도 외곬수가 되어가고 있는 그에게 호평과 작품 구매의사가 뒤따라주었다.

그렇다고 모네에게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폴 뒤랑-리엘에게 보낸 위의 서신에서도 적혀있듯이 그는 늙었고 기력이 쇠하여만 갔다. 백내장이 찾아와 시력이 훼손되었고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색안경을 직접 만들어 갈아 써가며 가까스로 회복한 시력에 다시 적응해나갔고 그걸 다시 화폭에 담았다. 화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병이었지만 모네는 그럭저럭 잘 넘겼다. 오히려 어쩌면 그것은 모네에게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나가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는 상실감에 휩싸여 연못 앞에서 멍하니 몇 달을 보냈다 한다. 두 번째 부인과 첫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장이 그를 떠나갔던 것이다.

모네의 망막에 맺힌 물이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물의 묘사에 관한한 그만한 이가 없다고 일찍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모네였다. 10년 전에 품었던 희망사항을 따라 그저 연못 앞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낸다 한들 아쉬울 게 별로 없었을 모네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가는 저 깊은 곳에서 자신에게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반의 사람들이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듯, 그것이 바로 화가가 지녀야하는 작가적 양심이기 때문이다.

1899년 작의 연못은 습지의 검녹색이 무성하다. 원근법은 사라지고 물은 식물들이 일으키는 색의 소용돌이로 채워졌다. 1910년에 그린 연못은 성난 듯 붉은 터치들이 이글거리고 있다. 물이 아닌 불을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1918년의 수련은 이제 우주가 되었다. 찬연한 빛깔들이 진공상태의 대기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모네는 말년에 그야말로 그림으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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