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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까마귀와 가물치의 어미 생각

 

남극의 신사 펭귄 어미는 알을 낳은 뒤 장장 보름 동안 먹이 찾기에 나선다. 아비 펭귄은 그동안 알이 얼을까봐 정성스레 품고 있다. 어미 펭귄이 돌아왔을 때 아비 펭귄은 굶주림과 눈보라 속에 지친 나머지 결국 바다로 나가 쓰러져 최후를 맞는다. 어미 펭귄은 뱃속에 저장해온 먹이를 토해 새끼들을 먹인다. 깊은 바다에 사는 연어는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은 후 한 켠을 지키고 있게 된다. 갓 부화되어 나와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몰라 하는 새끼들이 맘껏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하기 위해서다. 새끼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어미는 결국 뼈만 남긴 채 새끼를 위해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미물들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마음은 사람의 그것 이상이다.

효도하는 미물들도 있다.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하여 먹이를 찾을 수 없어 그저 배고픔을 참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화되어 나온 수 천 마리의 새끼들은 어미가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어,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워 준다. 어미가 눈을 뜰 때 쯤이면 남은 새끼의 양은 10%밖에 안 된다. 90%는 자신의 어린 생명을 어미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다.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까마귀 또한 자신을 먹여살린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씹어 먹여준다. 이래서 붙여진 이름이 반포조(反哺鳥) 또는 효조(孝鳥)다. 까마귀의 효도를 예로 든 일화도 있다. 이밀(李密·224~287)은 진(晉)나라의 무제(武帝)가 높은 벼슬을 내리자 늙으신 할머니의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가 이에 크게 노하자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저를 길러주신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달라”는 진정표(陳情表)를 올렸다. 그의 효심에 크게 감탄한 무제는 노비 둘을 하사하고 관리에게 명하여 조모의 의식(衣食)을 돕도록 했다.

어제가 어버이 날이었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부모님을 찾아 가슴에 카네이션과 선물을 드리며 만난 것 대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부모님이 둘 다 안 계신다. 장인어른도 일찍 돌아가셔 장모님만 홀로 남으셨다. 펭귄과 연어처럼 희생하며 길러주셨지만 그동안 가물치와 까마귀처럼 보답해드리지도 못 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돌아가신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초등학생 때부터 읊조려온 시조이지만 이제서야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닥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막심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서 주례를 할 때마다 잊지 않고 당부하는 것이 효도다. 그러면서 평생에 다시 못 할 일이 효도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또 반성하는 기회도 갖는다. 그래서 누군가 부모님은 절대로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 분이라고 했던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다. 공자도 동이(東夷·동쪽의 활 잘 쏘는 오랑캐)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럽고 누추하지 않겠냐고 제자가 묻자 “군자가 사는 예의지국이 어찌 누추하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조차 한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전통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효도’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을 모든 행동의 근본으로 삼았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는 민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효도란 잃어버린 단어쯤으로 생각하며 구시대 유물인 양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운 요즘이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이는 없다. 삶에 지쳐 잠시 잊고 사는 것이라고 위안삼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우물쭈물하다가는 나처럼 송강 정철의 훈민가 가사가 머릿속을 때릴 날이 반드시 온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에 큰 디딤돌이자, 버팀목이신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버이 날을 보내며 가물치와 까마귀가 보여주는 효도의 교훈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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