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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갑질 사회와 뿌리깊은 문화

 

5년간 150번 전화를 걸어 보험회사 전화 상담원에게 폭언과 욕설을 일삼고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5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재별가의 갑질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갑질’이 국적기를 타고 세계로 날았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관련해 외신들이 이를 ‘갑질(Gapjil)’이란 단어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1980년대 ‘재벌(Chaebol)’이란 말이 영어사전에 등재된 데 이어 ‘갑질’까지 오르게 생겼다. ‘갑질’은 권력의 상하관계로 발생하는 부당 행위를 일컫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제 갑질의 주체는 대기업과 재벌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직장은 물론, 가족과 친구 등 일상 관계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갑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회현상이다.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성인 2명 중 1명(54.3%)이 ‘갑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응답자들은 직장 상사(31.7%), 고용주(26.5%), 비스 이용자·손님(19.3%) 등을 ‘갑질’ 행사자로 지목했다.

일반 직장인의 경우 ‘갑질 상사’로부터 겪는 문제가 가장 크다는 뜻이다. 지난 2월 그 심각성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를 극단으로 내몬 ‘태움’ 문화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태움’은 간호사들 사이에 관습처럼 굳어진 군기 문화다. 사건 피해자의 경우, 업무 3일째부터 ‘태움’에 시달리다 두 달 만에 체중이 7kg이나 줄었고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수직 계열화된 서열 문화가 뿌리 깊이 박힌 상태다. 특히 ‘나이, 계급, 직위나 재산과 부에 따른 서열 문화가 강하다. 이에 따라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갑과 을을 나뉘게 된다. 선배-후배는 물론,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갑질’이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다.

지난 3월 홍익대학교 응원단 내에서 벌어진 ‘갑질’ 논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수습 단원이 SNS를 통해 한겨울 야외에서 얼차려를 받거나 쓰레기·담배·가래 등이 담긴 폭탄주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해 충격을 안긴 것이다. 특히 예체능 전공생들의 ‘선배 갑질’은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서까지 계속되는 경향이 커 더욱 문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학 내 ‘갑질’이 ‘전통’이라는 말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은 어떤가, 부모·자식 관계는 한 개인이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갑을 관계이기도 하다. 극단적 예가 지난해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소개된 엄마의 ‘갑질’ 사연이다. 고민의 주인공인 딸은 엄마가 자신의 물건을 동의 없이 버린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엄마는 “집안일은 내 관할이고, 내가 ‘갑’”이라며 딸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으로 빈축을 샀다. 부모의 ‘갑질’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고 가정 내에서의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권력이 형성되는 곳에서 그 아이는 또다시 가해자나 피해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갑질의 대물림을 할 것이다.

‘갑질’은 대부분 잘못 형성된 자존감에서 기인한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자존감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한다.

자존감이 높고 낮음보다는 어떻게 형성 되었느냐가 중요하다. 개인의 기질, 성격, 성장과정을 통해 건강하게 형성된 자존감은 대인관계에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부나 재력, 사회적 지위와 같이 사회 평가 요소들로 인해 형성된 자존감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다름없다.

하루빨리 정부는 만연한 ‘갑질’ 문화 근절을 위해 법령·제도개선 등을 통한 ‘갑질’ 사전 예방, ‘갑질’ 조기 적발 시스템에 대한 구축이 요구된다. 그리고 처벌 및 관리자 책임 강화와 더불어 피해 회복지원과 관련해 단계별로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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