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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소쩍새는 솥 적다고 울고

 

푸른 것들로 눈이 부시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녹음과 무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이 정겹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유년의 기억들이 까무룩 되살아난다.

아버지가 논을 갈아엎고 물을 가두면 개구리가 산란을 했다. 까맣게 슬어놓은 알들 속에서 올챙이가 나왔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해가는 과정이 신기했다. 아버지는 들일을 하고 나는 검정고무신에 올챙이를 담아 가지고 놀곤 했다. 모내기가 끝날 무렵이면 올챙이도 개구리로 변신했다. 그 개구리가 자랐을 때 막내 동생 몸보신 시켜 준다고 잡아서 풀에 꿰어 들고 다니던 기억에 웃음이 난다.

농번기가 되면 아버지에게서 논 냄새가 났다. 무논의 질펀한 흙냄새였다. 어둑어둑해지면 일소를 앞세워 돌아오는 아버지의 발에는 흙냄새가 배어있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삼베바지는 늘 젖어 있었고 댓돌 위에 고무신을 씻어 엎어놓으면 그 속에서도 흙냄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개구리가 울면 찔레꽃이 피기 시작했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놀다 찔레나무가 눈에 띄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한 줄기를 꺾어 벗겨먹곤 했다. 찔레나무 밑에는 뱀이 있다고 가지말라는 어른들의 걱정도 아랑곳없이 찔레줄기는 출출한 우리들의 간식이었다. 아카시 꽃을 한 줌씩 훑어서 먹다보면 꽃 안에 있던 벌이 우직 씹혀 놀라기도 하지만 오월의 간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우리는 자랐고 아버지는 늙어갔다. 아버지 키보다 높은 지게에 쇠꼴을 산처럼 쌓아 짊어지고 다니던 아버지는 천하장사인 줄 알았다. 겨울이면 땔감용 나무를 져 날랐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쇠꼴을 그리고 수확기가 되면 곡식을 늘 지고 다니셨다.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은 다 그렇게 기운이 센 줄 알았다. 아버지는 억척스럽게 일하셨다. 쇠전에서 비루먹은 소를 헐값에 사다가 갖은 정성을 들여 소를 살찌우고 그 소를 팔아 전답을 장만하고 살림을 불렸다.

자식들한테는 다소 냉정하고 근엄한 아버지였지만 할머니께는 더 없는 효자셨다. 할머니가 치매로 십여 년 넘게 투병하는 동안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돌보셨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삼년을 시묘살이하며 못 다한 효를 다했다.

전답도 늘어나고 살만해지자 아버지는 병환으로 몇 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육십 초반 한창 나이에 돌아가시게 됐으니 억울하기도 하련만 당신의 아픔과 고통보다는 남겨진 가족 걱정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모는 그런 것이다. 자식들에게 다 내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깝고 아쉬워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들 기념해야할 일이 많은 달이다. 입장에 따라서는 기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달이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자. 부모님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드리며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에 그동안의 고생과 힘겨움이 기쁨으로 전달될 것이다. 꽃 달아드릴 수 있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소쩍새는 솥 적다고 울고 우리네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지만 어린이 날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찾아뵐 스승이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가족과 이웃을 살피는 여유 있는 오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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