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道伴)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에 묵은 춘장을 앉혀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짜장면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 ‘미네르바 2017년 겨울호’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은 날이 있어 참으로 조용할 때가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음, 문자 메시지, 이제는 뒤로 밀린 듯 간혹 울리게 되는 전화음이 한 번도 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도를 대변하듯 울려대던 그 음들은 때로 피하고 싶은 소음이다. 하지만 들려오지 않으면 내가 잠시 소외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시냇물처럼 쉬지 않고 달려왔던 날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세상에게 잠시 삐쳐보기도 하고, 그 공허감이 클수록 나는 나를 더욱 위로하고 싶어진다. 내가 나를 데리고 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나에 대한 소중함, 아무도 함께할 수 없어 혼자 먹는 밥이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 세상 손잡고 걸어가야 할 영원한 도반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을.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