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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낯선 곳에서의 먹방

 

창밖으로 연거푸 흘러내리는 비. 나는 하릴없이 핸드폰만 이리저리 굴린다.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마주 앉은 숱한 그들의 표정 또한 무료하긴 마찬가지다. 말없이 멀뚱멀뚱 서로의 동태를 살피며 시간 흘러가길 기다릴 뿐. 한 오십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마이크로 흘러나오는 내 이름자. ‘이상남 대기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와글와글 시끄럽게 성업 중인 먹고 마시는 공간. 양산을 여행하던 중에 들른 일명 ‘맛집’이라는 곳이다. 처음 만나는 숱한 남들이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 그곳에서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빽빽하게 채워진 테이블마다 철저하게 분리된 다른 세상.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각자의 대화에 충실하며 식사에 임하는 모습들. 두서없이 떠들어대거나 일관된 침묵으로 이어지거나 어쨌든 그들은 지금 식사를 하는 중이다. 종종 옆 테이블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맛집을 찾은 그들만의 특권 또는 공통된 묘한 소통방법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 식사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텔레비전 채널마다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먹방’, 맛집소개 프로그램. 개인이 SNS로 띄우는 먹음직스러운 그들만의 맛집, 음식사진 등등이 어쩌면 그런 외식문화를 더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과 핵가족화 또는 일인 가족 등등의 가족 형태 변화 또한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창 성업 중인 우리나라의 ‘외식문화’는 사실 그 옛날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려 성종 때 양반이나 선비들이 주로 이용하는 송도에 처음 생긴 고급주점에 이어 현종 때에 상인이나 중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공설주막이 그 외식문화의 처음이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처음 외식은 5일장 따라나선 그 옛날 아버지와 중식집에 들러 먹은 까만 짜장면이었던 것 같다. 오이채 몇 개 오소소 뿌려지고 완두콩 서너 알을 고명으로 올려준 그 짜장면 맛의 기억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그 후, 연탄불에 구워내는 돼지 불고기, 돈가스에 이어 도심외곽의 가든, 무한리필 고기집에 이어 넘쳐나는 맛집들의 외식메뉴, 메뉴들의 세상. 하루가 다르게 오르내리는 신 메뉴들은 가히 음식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바싹 구워진 통 바베큐, 우리 아카시아 축제 때 먹었던 거, 그거 진짜 먹고 싶지?”

“갈치는 어때? 폭설에 갇힌 제주에서 먹은 매콤달콤 살살 녹던 갈치조림, 그 국물 맛 말이야.”

“두 끼 놓치고 들렀던 부추전, 보리밥집은 어때?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어서 미안했는데, 다시 가면 또 그렇게 먹을 것 같지 않아?”

내가 하는 음식 이야기에는 늘 그 음식과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유명 맛집이든 여행 중에 들른 흔히 만나는 일반 음식점이든 내가 그곳에 들러 좋은 사람과 각별히 맛있게 먹은 추억이 있다면 그곳은 내 최고의 맛집이 되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음식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 속의 추억 하나 꼭 회귀시키고 싶다. 낯선 곳에서의 먹방이라도 좋으니 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서로의 바쁜 일정으로 한없이 비워진 고픈 마음을 그득히 채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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