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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 연작

 

1967년 6월 19일,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파리 전체는 술렁거렸다. 멕시코의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였던 왕가는 강제로 막시밀리안 대공을 멕시코의 황제로 파견시켜놓고는, 멕시코 주둔 군력을 유지할 예산이 바닥나버리자 황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군대를 철수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에 막시밀리안은 즉시 처결 당했고, 파리 내에서는 왕당파와 공화당 지지자들 간의 대립이 첨예해졌다.

마네는 즉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이라는 제목으로 가로 2m 안팎의 대작들을 여러 점 그리기 시작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네가 이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당초에 그는 작품을 통해 이 사건을 세상에 널리 고발할 생각이었지만, 끝내 국전에의 출품은 포기하였고, 관객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마네는 프랑스 군인들의 스페인인 학살을 다룬 프란시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고야를 습작하며 연구하고 있던 마네는 이 작품의 구도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면서, 60년 만에 프랑스가 또 다시 자행한 잔혹한 일을 고발하고 있다. 다시 몇 십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이 모티브를 가져왔다. 한국전쟁 중 행해진 민간인 학살을 작품으로써 고발했던 것이다.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은 네 개 작품으로 이루어진 연작인데, 맨 처음 완성된 버전은 격앙된 듯 매우 거친 붓 칠로 그려졌다. 장총을 겨냥하고 있는 군인들의 무리는 빽빽하고 그들의 총부리는 희생자의 가슴팍까지 닿을 것만 같다. 화면을 답답하게 채우고 있는 구도와 거친 터치는 작가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버전과 네 번째의 최종 버전은 거의 비슷한 구성을 지니고 있지만, 보다 냉정한 시선이 담겨 있으며, 붓 터치도 한결 차분하다. 첫 번째 버전의 그림과 같이 군인들과 희생자들은 조밀하게 모여 있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들의 뒤로 높은 회색 벽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벽과 인물들 사이에도 거리감이 거의 없는 듯하다. 희생자의 목은 뒤로 확 젖혀져있고, 희생자의 가슴을 향하고 있는 총부리는 배경에 놓인 벽과 함께 정확히 수평을 이루고 있다. 희생자는 의도적으로 군인들보다 작게 그려졌다. 이는 희생자가 그만큼 멀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거리감이 회화 안에서 무의미 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화면의 구성은 극도로 평면적이어서 관람자의 시선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세 번째 버전은, 필자의 견해로는 가장 마네의 작품다운 버전이다. 처형을 당하는 이와 군인들의 구도, 수평으로 겨눈 총부리의 구성은 다른 작품들과 일치하지만, 처형자의 얼굴과 군인들 중 한 명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충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대에 발표가 되었다면 ‘올랭피아’ 때보다 격한 반응이 일어났을 것이 자명했다. 흰 셔츠를 입고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을 바라보며 얼이 빠져 있는 희생자의 얼굴이 마치 보도사진 속 인물인양 생생하게 다가온다. 군인들 무리들의 뒤쪽에 서서 마치 조준을 명하고 있는 듯한 인물은 희생자의 시선을 피하고 있으며, 그의 표정 속에서는 냉혹함과 괴로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배경은 답답한 회색 벽 대신 산중의 벼랑 끝을 택하고 있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주변에서 일어난 일인 듯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인물의 복잡한 심연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마네였으니, 비록 현장을 직접 보진 못했어도 이와 같은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그의 아들이 작품을 팔기 용이하도록 여러 조각을 내버렸다. 미완성된 퍼즐과 같은 지금의 형태는 그나마 드가가 조각난 그림들을 사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충격적인 인상 때문에 애초에 이 작품은 조각날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생자들의 얼굴이 모두 담겨진 원형 그대로의 작품을 접했더라면, 우리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잔혹함에 대하여 더더욱 치를 떨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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