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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동옹성(東甕城)

 

 

 

수원화성의 4개 옹성 중 남·북옹성이 같고 또 동·서옹성이 같은 제도라고 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다른 부분이 많이 보인다. 당시는 지금의 설계도(평면, 입면, 단면, 상세 등)처럼 세분화되지 않아 한 장의 간가도(間架圖·평면도)만 있었고 중요건물에 한해 투시도가 있었을 뿐이다. 한 장의 간가도만 가지고 공사를 하게 되면 평면 이외 많은 내용을 현장책임자가 결정해야 하고 그의 재량에 따라 결과물은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개 옹성을 비교하여 서로 다른 부분을 찾아보자.

동·서옹성의 위계(位階)는 남·북옹성에 비해 낮은데 이는 주요 도로상에 있는 것과 달리 동·서옹성은 보조 도로상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둘레와 높이가 남·북옹성에 비해 작고 옹성문도 없다.

옹성 재료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남·북옹성의 외내벽은 중국 병서에 따라 모두 벽돌로 되어 있으나 동·서옹성은 외벽만 벽돌로 되고 내벽은 돌로 되어있는 점이다. 벽돌은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흔치 않은 재료로 제작과 시공기술이 낙후되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고 돌(石)을 사용하는 것이 벽돌보다 훨씬 경제적이었다. 또한 옹성 내부 공간은 육축(대문의 석축)과 옹성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육축은 이미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새로 추가하는 옹성 내벽을 벽돌로 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여 이전의 남·북옹성과 달리 돌로 만들었다.

현안(懸眼, 성곽 외벽에 수직으로 구멍을 뚫어 성벽 아래에 있는 적을 뜨거운 물이나 기름으로 공격하는 시설)의 설치도 재미있는 부분들이 발견된다.

북옹성은 타구와 현안의 위치가 일치하고 있어 기하학적이고 동·남옹성은 타구와 관계없이 현안이 설치되어 입면이 복잡하여 미학적으로 부족함이 있다. 서옹성은 별도의 타구가 없는 평여장으로 현안과 타구의 일치성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아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옹성 중 유독 동·남옹성의 현안제도가 같은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의궤에서 감독관이 누구인지 찾아보니 참사(종3품) 출신의 정호남(丁好南)이었다. 한 감독관이 만들었으니 같은 형식이 된 것이 당연한 일이겠다.

건설비용 부분에서도 이상한 점이 보인다.

남·북옹성의 제도가 같고 동·서옹성 제도가 같다고 되어 있는데 건설비용에서 각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북옹성은 1795년 만들어지며 공사 기간은 북옹성이 겨울 공사로 인해 4개월이 걸리고 남옹성은 1달이 걸렸다. 공사비용은 남·북옹성 똑같이 약 1만5천냥이 들어가나 북옹성이 남옹성보다 4배의 기간이 더 걸린 것을 고려하면 같은 비용에 의문이 든다. 동·서옹성은 1796년에 문이 없는 형식으로 9일 만에 완공된다. 비용은 동옹성은 약 3천냥, 서옹성 약 2천500냥에 비해 500냥이 더 많이 들어갔다. 규모로 보면 서옹성이 더 크고 높은데 오히려 동옹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 것도 의문점이 생긴다. 참고로 동옹성는 서옹성에 비해 외부둘레가 91척(28m), 110척(33.9m)으로 19척이 작고 높이는 9.6척(2.96m), 11척(3.39m)으로 1.4척이 낮다. 동·서옹성의 재료 사용량이 화성성역의궤 실입편에 기록되어 있는데 벽돌에서만 많은 차이를 보이고 나머지는 같다. 동옹성의 대방전은 1천173장으로 서옹성의 549장보다 624장이 많다. 또 반방전은 동옹성이 6천231장으로 서옹성의 4천62장보다 2천169장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 동옹성이 서옹성에 비해 형상은 같으나 규모가 작은데 오히려 더 많은 벽돌이 사용되었다. 외형이 같으니 안 보이는 곳에 사용된 것이 확실하다. 옹성곽 내부에 사용했을 가능성과 옹성 이외의 사용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동옹성의 여장은 1970년대 ‘수원성 복원사업’을 하면서 내외부 여장높이를 같게 복원하였다. 하지만 의궤에서는 외부가 4척(1.23m), 내부는 3척(0.92m)으로 기록되어 있고, 복원 전 사진도 내부 여장높이가 훨씬 낮아 보인다. 아쉽게도 이런 오류는 북옹성에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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