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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또다시 종점들

 

 

 

또다시 종점들

/이승희

여기는 발자국만으로도 빛나는 세계. 여권 없이 넘어가는 국경, 철조망과 구름 사이에서 늙은 플라타너스는 자란다. 누구에게도 안녕을 묻지 않는 바람이 불어와 몇몇은 아주 종점이나 될까 싶어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좀 간절하지 않아도 좋겠다. 깊어지지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다 플라타너스의 말을 들었기 때문. 더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냥 이쯤에서 마주 앉은 사람도 없이 흐지부지 늙어가면 좋겠다는 말. 버스들은 지금 어느 먼 별의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 하루 우리는 우리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얼마나 멀어져야 별에 닿을까. 내일을 철조망에 걸어두고 우리는 점심시간처럼 걸어가는 것이다.-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 2017

 

 

 

 

 

 

아직 5월이지만 바람이 차다. 베란다를 서성이는 몇 개의 별빛이 사라진 새벽, 나는 운행을 마친 적막한 ‘종점’의 을씨년스러운 버스들을 떠올리면서 시를 읽는다. 그런데 “좀 간절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구절에서 갑자기 숨이 멈췄다. 시인이 살아온 내력이, 그 간절함의 깊이가 나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늙은 플라타너스’처럼 철조망과 구름 사이에 쓸쓸하게 꽂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냥 이쯤에서 마주 앉은 사람도 없이 흐지부지 늙어가면 좋겠다”고 유서를 쓰듯 고백한다. 이번 생에는 더 이상의 간절함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바람도 소슬한 휘파람을 불면서 시인을 깊게 포옹하는데, 문득 나의 간절함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또한 이렇지 않은가. 삶이 버거운 순간순간 ‘내일’을 철조망에다 내걸고 점심시간처럼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야 할 것이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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