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플라워
/신덕룡
더 이상
젖을 일 없습니다.
가슴을 울리고 지나간, 물기와 향기 모두 걷어가버린 당신의 발소리를 지웠습니다. 말끔하게
꽃으로 남았습니다.
-신덕룡 시집 ‘아름다운 도둑’
우리는 살아가면서 젖을 일이 많다. 물론 웃을 일도 많지만, 그보다 습기 머금는 날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밝음 보다는 어둠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네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꽃이 젖었다. 가슴을 울리고 지나간 당신이 꽃을 울렸다. 당신으로 인해 활짝 피어났던 꽃은 당신을 지우려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안의 모든 생기와 향기를 끌어올려 주었던 당신의 발소리를 지운다. 말끔하게 지운다. 전신이 깡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꽃은 당신을 비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함께 웃었던 날들, 내가 당신이었고 당신이 나였던 날들, 하지만 누구에게도 젖을 일 없는 온전한 나만의 모습으로 남아보는 것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누구에게도 구속되거나 기대지 않는 그 독립의 자유로움은 또 다른 당신을 사랑하기 위한 문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