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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노을에 들다

노을에 들다

                          /조수일

대문을 열고 나오려다 멈칫, 숨을 죽인다

주차된 차 후미 귀퉁이를 잡고 바스러질 듯 서 있는, 옷깃이 보인다

비둘기색 양복 바짓단 헐렁거림이 보여 온다

비스듬히 차체에 기댄 주렁이 보이고

주렁 끝 손잡이 마냥 곡진하게 굽은 등이 보인다

노신사, 볼 일 보는 중이다



오줌발, 얼마나 곤궁스레 수척히 말랐는지 소리도 없다

뒷바퀴를 방울방울 새의 눈물, 그것처럼

타고 흘렀을 생의 끝자락이 보인다

비척비척 걸음을 뗀다

애가 타는지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해가 골목을 붉게 물들인다

잦은 잔바람에 이제는 노쇠해져 훌렁훌렁 넘어지는

집집마다의 노송 한 그루, 지금 노을 속으로 들고 있다



문 틈새 담벼락 타고 막 피어오르던 넝쿨장미의 먼 산 보던 눈 가,

벌개진다

 

 

 

 

이렇게 따뜻한 시선이 있을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있을까. 양복을 입은 노인이 주차된 차 후미에서 오줌을 누는 것을 보면서 주책이라고 흉보기 바쁜 세상인데, 그것을 이렇게 그려 놓다니 도대체 어떤 눈을 가진 사람일까. 비스듬히 차에 기대서 누는 오줌발을 통해서 “얼마나 곤궁스레 수척히 말랐는지 소리도 없다”고 말하는 대목과, 자동차 “뒷바퀴를 방울방울 새의 눈물, 그것처럼 타고 흘렀을 생의 끝자락이 보인다”는 대목에서 그 노인을 그린 시인의 성정과 수사에 대해 경외감마저 든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애가 타는지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해가 골목을 붉게 물들인다”의 해와 “문 틈새 담벼락 타고 막 피어오르던 넝쿨장미의 먼 산 보던 눈 가, 벌개진다”의 넝쿨장미다. 걱정이다. 앞으로 노을을 보게 되면 노을보다도 못한 마음을 가진 내 마음이 보일 테고, 넝쿨장미를 보면 넝쿨장미의 눈보다도 못한 내 눈이 보일 테니 말이다. 노을이 지면 고개를 숙이고 가야 할까. 넝쿨장미가 보이는 골목에서는 눈을 내리깔고 지나가야 할까. 노을은 붉어지고 넝쿨장미는 벌개지는데, 내 가슴은 돌덩이 같고 내 눈은 붉은 물기 한 점 스며들지 않는 것 같아, 애만 탄다. /이종섶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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