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임지훈
베개에 얼굴을 묻고
사람을 떠올린다
긴 생각에 잠이 갈대처럼 텅 비어간다
그늘에 꽂혀 있는 벚나무
가지위에 위태롭게 걸린 초승달이
소리 없이 꽃잎을 자르고 있다
손톱보다 작은 봉오리
눈 감고 연못으로 내려앉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울어야 하기에
봄밤은 길고
생은 가볍다
‘가벼운 생’이 ‘가여운 생’으로 읽혀지는 건 왜일까?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누군가의 생각에 긴 밤을 불면과 씨름하는 사람 “긴 생각에 잠이 갈대처럼 텅 비어”가는 純然한 사랑의 주인공이 ‘나’이기 때문이다. 홀로 울어야하는 봄밤은 길다. 그래서 더 슬프다. “위태롭게 걸린 초승달이/소리 없이 꽃잎을 자르고 있”는 슬픔, 이러한 슬픔의 중독 또는 운명적 인식은 근원적인 면에서 인간의 한 본질로서 고독과 절망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져 관심을 환기한다. 슬픔이여 오라! 내 오늘 밤도 기꺼이 너를 안고 울어주겠다.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깊은 고독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이채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