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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교수→ 국회의원→ 장관 거쳐 ‘경기교육’ 발전에 혼신

경기고 졸업후 고향 진천서 무상 교육 신명학원 설립
성공회대 설립에 일조 초대 총장 지낸후 정치계 입문
통일부장관때 남북철도 개통·2007년 남북회담 실무 총괄
세계시민교육·학생중심교육 성과 앞세워 도교육감 재선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이재정, 그가 걸어온 길

경기교육은 무상급식과 혁신교육에 이어 지난 세계시민교육과 학생중심교육으로 도약하면서 이미 경기도를 넘어 우리나라 교육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이미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경기교육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도교육감 재선에 도전했다.

종교인으로서의 신념을 바탕으로 국민의정부 시절 정계에 입직한 이후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와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이재정 당선인.‘세월호 교육감’으로 불리는 이재정 당선인은 앞서 누리과정 사태에 보여준 원칙과 교육재정 확보, 4·16교육체제 수립, 혁신학교 심화발전, 자유학기제 운영확대, 진로지원센터 운영 등을 통해 학생중심교육을 실천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문재인정부의 교육부분 국정과제의 기초가 되어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편집자 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1944년 3월 1일 충남 입장에서 출생해 부모님의 고향인 충북 진천에서 성장했다.

진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부터 서울에 유학한 뒤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를 1962년에 졸업했다.

1962년 고향에서 (관인)신명학원을 설립해 중학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한 무상 중등과정 교육을 3년간 운영했다.

1965년 뒤늦게 고려대학교에 진학해 1969년 2월 문학사 학위를 받았고 스승과 주변의 권유로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에 입학해 3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후 1972년 대한성공회 사제로 입직했다.

마침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였기 때문에 유신반대 투쟁에 참가하면서 교계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쳤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교회와 사회위원회 및 인권위원회 임원, 한국기독학생총연맹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와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1982년 강화교회에서의 목회를 끝으로 캐나다에 유학,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8년 귀국했다.

이후 신영복·조희연 교수 등과 함께 성공회대학교를 세워 가는데 헌신했으며 1994년에는 초대 총장에 부임했다.

당시 성공회대학교가 역사와 사회에 열린 대학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대안을 창출하는 진보적 학문을 이룩하기 위하여 진보학문의 학파를 만드는데 진력했다.

이 시기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1989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남북교회 및 세계교회대표들이 참석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의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워싱턴, 토론토, 도쿄 등지에서 열린 기독교계의 남북회담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또 민간단체인 남북농업발전협력협회의 이사장으로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1998년 7월에는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외환위기로 맞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 사회에 복귀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어 1999년 5월에는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에 임명돼 6개월간 사법개혁추진계획을 성안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두달 앞선 3월에는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에 선임돼 새로운 정치를 이룩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대표가 됐다.

같은해 말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새로운 국민정당을 창당하기 위한 신당추진위원회의 총무위원장으로 참여해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교육위원회 간사로서 교육개혁과 정치개혁에 기여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 경선과정부터 참여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유세연수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총무위원장으로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2004년 10월 24일에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돼 2006년까지 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2006년 12월 11일 제33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돼 중단상태였던 남북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는 한편 남북철도 개통과 열차 시험운행은 물론 남북열차정기운행까지 주무 장관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또 2007년 10월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 기획단장으로 정상회담의 준비과정부터 정상회담 진행과 배석 및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이르기 까지 전반적인 실무를 책임지고 총괄했다.

장관 재임 동안 남북관계는 모든 기록을 경신,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의 활성화와 남북경협의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정권교체로 2008년 2월말 정부에서 물러난 후 노무현 대통령의 뜻으로 설립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노무현 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고 2010년 국민참여당의 초대 대표 등을 맡았다.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위한 연구와 교육과 함께 노무현재단 10·4남북정상선언기념특위 위원장, (사)코리아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일하던 중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선거 출마를 공식선언, ‘2014행복한경기교육희망연대’ 주관 민주적교육개혁 경기교육감 후보 경선에 참여해 단일후보로 선정됐고, 민선3기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됐다.

 

 

 

 

경기도교육감 취임 직후 학생중심교육철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학생의 눈으로 학생이 직접 제안한 9시등교제를 전격 시행했다. 9시등교제는 2017년 9월 학기 기준 도내 전체 학교의 98.8%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서울·강원·충남이 오전 9시 등교를, 광주·인천·전북이 8시 30분까지 등교를 권장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학교 밖 마을학교로 꿈의학교, 꿈의대학 정책들을 추진, 정착시켰다.

또 2014년부터 중앙정부에서 대통령령으로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비용을 일선 시도교육청에 전액 전가해 교육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고, 경기도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학교기본운영비 일괄삭감 등의 노력에도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자 박근혜정부와 지난한 싸움을 시작해 청와대 1인 시위, 누리과정예산편성 거부 등을 통해 강경하게 맞섰다.

결국 국회는 2015년도 누리과정비 어린이집예산 5천64억원을 목적예비비로 지원(경기 1천17억원 확보)했으며, 이듬해도 5천억원(경기 941억원 확보)의 예산을 따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교육감은 2016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으로 취임해 누리과정 이슈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며 교육재정확대싸움을 이어갔고 끝내 2016년 하반기 유아교육지원회계특별법 제정 결과, 국고 일반회계에서 8천600억원을 2017년 누리과정비로 지원받기에 이르렀다.

이후 촛불혁명으로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지속적 의견개진을 이어가 현재 신정부에서 누리과정예산 중 어린이집 비용을 전액지원, 누리과정예산 논란이 종식됐다.

이밖에도 이재정 교육감은 4·16교육체제의 수립, 혁신학교 심화발전, 자유학기제 운영확대, 교육협동조합 설립, 진로지원센터 운영 등의 학생중심교육 실천 정책들을 추진,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분 국정과제 기초가 됐다.

/백미혜기자 qoralg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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