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윤희의 미술이야기]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마네가 5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바로 직전, 병과 싸우며 남긴 유작이라 하기에는 조금 놀라울 정도로 젊고 생동적인 감각의 그림이다. 파리 사교계의 주요 장소였다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아름다운 빛과 조명, 향기로운 소품들, 멋지게 차려 입은 인파들로 풍성함을 이루고 있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마네는 온몸이 매독으로 썩어 들어가는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도시의 향락과 빛깔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폴리 베르제르의 화려함을 등지고 서있는 여성은 무심한 듯, 고독한 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서있었는지 바 위에 고정되어 있는 두 손과 팔목에는 벌겋게 핏기가 올라와 있다. 그녀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서있으므로, 그녀의 배경에 위치한 화려한 바의 모습은 사실상 그녀의 정면에 펼쳐진 풍경이라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느 곳에도 시선을 주고 있지 않다.

거울 속 풍경에서 유난히 밝은 동그란 조명이 눈에 띤다. 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워낙 무심하고 거친 터치로 처리되었기에, 자세한 옷차림과 동작은 파악할 수 없어도 아마 그들은 모두 세련된 차림의 도시남녀들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한 묘사 대신 크고 작은 점을 적당히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마네는 도시에 살고 있는 대중들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만년의 마네가 그리고자 한 것은 고독한 도시의 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발코니 위에 촘촘히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저 멀리로 물러가 버렸고 그들 앞에 서 있는 여성의 풍채는 좀 더 현실적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려고 한다. 그녀의 양 옆에는 좋은 향기를 머금었을 법한 샴페인과 와인 병, 장미가 꽂힌 잔과 오렌지가 놓인 유리그릇이 놓여 있다. 마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어떠한 대상은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보내 버렸고, 어떠한 대상은 우리가 직시해야만 하는 실체로서 우리의 코앞에 갖다놓을 수 있었다.

발그레한 뺨의, 젊고 아름다운 이 여성은 실제로 이 카페에서 일하던 종업원으로, 마네의 요청을 받아들여 모델을 서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마네는 자신의 작업실에 폴리 베르제르의 대리석 바를 구현해 세워놓았다. 당시 댄스홀이나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매춘을 겸하는 일은 흔했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 어떤 신사도 그녀에게 말을 걸며 그녀의 드레스 가슴골에 꽂힌 꽃에 그윽한 시선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정 없이 우울한 그녀의 얼굴을 그 누구라도 쉽게 홀대할 수는 없으리라.

거울은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우리가 그녀를 바로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의 그림자는 그녀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야 논리에 맞지만, 그림자는 살짝 옆으로 비켜서 있다. 게다가 그녀의 그림자는 한 신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앵그르의 거울 앞에 서있는 여인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많은 사람들은 고전주의 화풍이 대상을 가장 적절하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여러 눈속임과 조작들이 무수히 도사리고 있었고, 마네는 그것들을 집요하게 떨쳐 버리고자 했었다. 마네는 거울과 그림자라는 장치를 통해 앵그르의 작품을 환기시킴으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 그리고 진실 된 것과 거짓된 것이 무언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을 것이다. 거울 속에는 그 밖에도 꽤 많은 오류들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바 위에 세워진 병들이 거울 속에는 있는 그대로 그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오류들을 찾아내는 일은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거울 속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신사 역시 몹시 고독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도시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란 번뜩이는 눈빛으로 시작될 수는 있어도 결국 인간은 하나의 고독한 섬으로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모든 인연이 모두 허망하지만은 않듯, 우리는 그 속에서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그 무엇을 포착할 수 있다. 폴리 베르제르의 바 한가운데 서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여인의 심리에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보시기를!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