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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조유리



파지, 상한 달걀, 시든 파뿌리

고맙다



한 덩어리 노독을 얻어

삶이 아닌 것들 삶이 되게

구기고 깨뜨려

뒷모습 다 퍼내고



오늘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둔다



살아서는 지펴보지 못한

눈빛들, 저물녘 궁리포구에 널어둔다



썩은 냄새 풍기는 저것들

참 고맙다

- 조유리의 시집 ‘흰 그늘 속 검은 잠’ 중에서

 

 

막다른 포구에 다다는 것처럼 가던 길을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속수무책의 사태에 직면할 때가 있다. 노독(路毒)의 덩어리가 나를 가위처럼 짓눌러 꼼짝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비록 바라왔던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살아 있다.’에만, ‘살아 있기에’ 이런 가위눌림도 당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보자. 그러면 나의 ‘삶’을 위해 죽어야만 했던, 지펴지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파지나 상한 달걀이나 시든 파뿌리처럼 버려졌던 나의 뒷모습들, 나의 신념과 나의 의미와 나의 사랑들. 사실, ‘나’는 저것들을 딛고 간신히라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썩은 냄새 풍기는 저것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저것들 속에서 잠시의 피안이라도 찾을 일이다. /김명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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