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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먹고 사는 문제가 안 풀리면 다 필요 없어!”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세 가지로 대답했다. 정치는 ‘백성들이 먹고살게 해주어야 하고(足食), 군사력을 키워 방어를 통해 생존이 가능해야 하고(足兵), 백성들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民信)’고 대답했다. ‘한서(漢書)’에도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임을 뜻한다. 임금된 자는 백성을 하늘 섬기듯 해야 하지만, 백성들의 하늘은 임금이 아니라 곧 식량임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옛 성현들도 경제문제만큼은 가장 절실한 것으로 봤다.

맹자(孟子)는 또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생업을 보장하는, 즉 항산(恒産)이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일정한 마음,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며, 그렇지 못하면 어떤 나쁜 짓이라도 할 수밖에 없으니 사후 처벌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정치의 첫걸음이 백성의 의식주(衣食住)를 만족하게 하는 민생에 있다고 역설한 맹자의 말씀은 이 시대에도 적용되는 뼈아픈 가르침이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비롯된다. 대다수 민초들 역시 국가권력이 어디로 가든지 백성들 잘먹고 잘살게 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를 하면 ‘꼰대-노인네’ 소릴 듣는 요즘이다. 아직 이 소릴 들을 나이는 아니지만 1960년대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강냉이죽을 끓여주었다. 그것도 지금의 차상위 계층이라 할 수 있는 몇몇 학생들에게만 차례가 돌아갔다. 그걸 배급받아 먹는 몇몇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나마 우리 집은 콩나물국에 김치반찬으로 세 끼를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생일에 어머니는 쇠고기 뭇국에 쌀밥을 1년에 딱 한번 해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아버지의 월급 날 꽁치 몇 마리가 밥상에 올라온 것에 행복해 했다. 한 친구는 누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가 이와 벼룩이 많다고 아버지가 옷에다가 농약을 흠뻑 뿌렸다. 농약 범벅이 된 걸 모르고 점심 때 그것을 먹은 그 친구는 저 세상으로 떠났던 가슴 아픈 기억도 있다.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모든 문제는 먹고사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다분히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이야기지만 이 문제를 놓고 인간은 끝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밥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밥 먹었냐’가 인사말이다. 만나자고 할 때도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란 밥을 함께 먹는 식구(食口)이고, 직장 동료는 한솥밥 먹는 사이로 통용된다. 친구의 회사엘 가보면 ‘한솥밥 한식구’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다. 거기에 담긴 함축된 의미를 설명듣지 않았지만 알고도 남음이 있는 이유다.

공자도 정치의 첫째 원리로 족식(足食)을 강조했듯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치국(治國)의 근본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대부분 이겨 범여권이 국회의 과반수를 장악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지방권력에까지 국민들은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몰아주었다. 지리멸렬한 보수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그렇다고 집권당은 여기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두고 보겠으니 더 잘하라는 뜻이다. 시장에서 들리는 ‘못 살겠다’는 아우성을 듣고는 있는가. 젊은이들은 ‘알바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 어려운 현실을 과연 알고는 있는가. 석 달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던 취업자 증가 폭이 지난달에는 7만명대까지 추락했고,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또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들린다.

야당이 해체수준의 새 판을 짜겠다고 하듯이 정부도 이제 오로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후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어떤 결정을 또 내릴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안 풀리면 다 필요 없어! 젊은 사람들은 욕해도 나이 든 우리들한테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서 고마운 거야.” 선거 이후 한 노인이 내뱉은 중얼거림이 꼰대(?)의 독백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결코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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