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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간 숨겨진 낯선 공중도시 그곳은 ‘걸작의 제국’

페루 수도 ‘리마’까지 20시간 비행
한국의 13배·남미서 세번째 큰 면적
옛 문화와 현재 문화가 서로 공존
잉카제국 석조건축 기술 단연 으뜸
대지진에도 흔들림 없이 오랜세월 견뎌
잉카레일 타고 계곡·밀림·설산 감상
마추픽추에 도착하자 웅장함에 압도

 

 

 

조각가 이윤숙(대안공간 눈 대표)

여행 가셨다가 남미의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보석 같이 아름다운 돌과 돌보다 단단한 나무 등 널려있는 조각재료에 매료돼 35년 전 교수직을 버리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오로지 작품에 몰두하고 계신 은사님을 찾아뵙기 위해 30년간 벼르던 남미 대륙을 드디어 밟게 됐다.

그러나 남미여행길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워낙 멀고 큰 대륙이라 이동 경비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가는 길에 꼭 돌아 봐야 할 잉카 유적지와 안데스 고원 등 겸사겸사 들려 보고 싶은 곳이 많다 보니 여행기간을 최소 한 달 이상은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높은 해발 고도 차로 인한 고소증세와 불안한 치안 걱정이 앞서 남미 대륙은 더욱 낯설고 멀게 느껴졌었다. 거기에 내가 원하는 코스로 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 직접적인 조언을 받지 못해 떠나기 전날까지도 기대와 두려움에 두근두근 하며 짐을 꾸려야 했다.

페루에서 시작해 볼리비아, 칠레,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 아르헨티나까지, 32박33일간의 여행일정은 굉장히 빡빡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고소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풍광과 색다른 경험으로 여행 내내 정말 잘 왔다 생각 들었고, 집에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좋은 여행이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또 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 넘치는 남미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잉카제국의 숨결이 살아있는 페루

태평양을 가로질러 LA를 경유해 페루의 수도 리마까지 비행시간만 20시간 걸려 도착한 신비의 나라 페루의 첫 인상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며 페루인들이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남미 사람(인디오)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페루는 한국의 13배,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가는 곳마다 아주 변화무쌍한 자연환경과 기후를 만난다. 그래서 남미 여행자들은 얇은 여름 옷 부터 겨울 점퍼까지 모두 준비해야 한다.

해안을 따라 5천m이상의 안데스 산맥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있어 확연히 구분되는 특이한 기후와 지형을 이루는데 크게 태평양 연안 ‘코스타’(Costa) 10%, 안데스 산지 ‘시에라’(Sierra) 27%, 아마존 지역 ‘셀바’(Selva) 63% 로 나뉜다. 흔히 아마존 하면 브라질을 떠올리지만 페루 역시 아마존 밀림지역이 대부분이다.

수도인 리마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그대로 보존돼있는 식민시대의 건축물과 가난한 도시 빈민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재래 시장들과 관광객을 위한 인디언 마켓들, 곳곳에 전시돼 있는 오래된 유물과 현대적인 예술품 등 가는 곳마다 오래된 문화와 현재의 문화가 공존하고 뒤섞여 있다.

 

 

 

 

피스코 만에 꽃피웠던 해안 문화와 물개, 펭귄, 펠리칸, 갈매기 등 온갖 바닷새들의 낙원인 바예스타섬, 나스카 일대 신비의 지상화들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잉카제국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가기위해 해발 3천400m에 위치한 쿠스코로 향했다. 전에는 버스를 이용해 천천히 고소적응을 해 가며 이동하는 코스가 있었다는데 잦은 도적떼의 버스강탈로 최근에는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한다고 한다. 사막 고원지대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오지가 많다 보니 인터넷 연결이 전혀 되지 않는 지역이 많고 강도를 만나도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비행기로 단숨에 해발 3천400m에 올라오니 고소증세가 바로 느껴진다. 그래서 남미 여행은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고 했나보다. 공항 라운지에 소복하게 놓아 둔 코카 잎 하나를 입에 넣고 한참을 씹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쿠스코 시내로 들어간다. 쿠스코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잉카와 스페인 식민 시절의 경계지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상징한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쿠스코를 함락하고 도시를 재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잉카 건물을 부수고 잉카시대의 초석위에 교회와 저택을 세웠다. 그러나 쿠스코 주변에는 마추픽추를 비롯해 잉카시대의 유적들, 길, 다리, 터널 등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잉카의 수도답게 수준 높은 문명을 영위했던 잉카제국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페루다운 곳, 히말라야 트래킹을 위해 카투만두에 머물 듯 쿠스코는 페루 여행자들의 낙원으로 느껴졌다.

 

 

 

 

100여년에 걸쳐 지어진 쿠스코 대성당은 키스와르칸차(Kiswarkancha)라는 비라코차(잉카 신화에 나오는 세계의 창조자)의 신전이 있던 곳이다. 지붕 꼭대기에는 남미에서 가장 큰 종이 설치됐고, 성당 안에는 300t의 은으로 섬세하게 꾸며진 은 제단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인데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중앙의 메인 메뉴는 ‘꾸이’(페루 전통식 기니피그 구이) 과일은 ‘그라나디아’, 와인 대신 ‘치차’가 그려져 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유일하게 다른 곳을 응시하는 사람은 ‘유다’로 얼굴은 ‘피사로’의 얼굴로 표현돼 있다. 스페인 침략이후 잉카원주민들의 신과 그리스도 세계관이 합쳐져 그들만의 양식으로 표현된 성상들이 우리나라 가톨릭 성미술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잉카제국의 기술 중에 석조건축기술은 단연 으뜸이다. 작은 틈새하나 없이 모서리를 맞춰 촘촘히 쌓아올린 석조 기술은 대 지진에도 끄떡없이 오랜 세월을 견뎌냈다. 그 중 12각의 돌은 완벽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했다. 수원화성도 비슷한 형식의 축조법인데 잉카에 비하면 아주 여유로운 느낌이다.

고소 적응을 위해 골목 산책 중 비를 피해 들어간 잉카박물관의 수장품들에 놀랐다. 잉카이전과 잉카시대의 직물, 도자기, 농기구, 토기 등을 전시 해 놓았는데 잘 보존된 유물들이 대단했다. 쿠스코 시내에만 이런 박물관이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니 오래 머물면서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쿠스코 주변의 잉카밸리 유적지들 퓨마의 머리라 불리우는 사크사이와망, 미라도르 전망대, 길흉을 점치던 겐코, 붉은 요새 푸카푸카라, 성스러운 샘물이 흐르는 탐보마차이, 성스러운 계곡에 위치한 콘도르 형상의 피삭, 우르밤바 민예품 시장, 고산 속의 염전 살리네라스, 오얀타이탐보를 거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이동하기 위해 잉카레일을 탔다.

기차는 계곡을 따라 놓여진 철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계곡과 밀림, 설산 등 풍광을 좌석에 앉아 감상할 수 있다. 큰 창과 천정에도 유리가 끼워진 특수 제작된 기차로 여권이 있어야 탑승할 수 있다. 1시간 50분 거리, 왕복120달러, 비싼 가격이지만 일정에 맞춰 마추픽추를 가기위해서는 이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잉카제국의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 는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 는 뜻이다. 유적지는 늙은 봉우리와 젊은 봉우리 ‘와이나픽추’ 사이에 위치한다.

해발 2천430m,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을 헤치며 올라 기다리니 거짓말처럼 운무가 거치며 위용을 드러낸다.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바로 준비해간 무경계프로젝트 ‘온새미로’ 보자기를 펼쳐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경비가 나타나 보자기를 접으라고 한다. 신성한 잉카유적지를 민감하게 관리하고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니 다른 곳으로 간다.

 

 

쿠스코에서 110km떨어진 깊은 산 속, 스페인 식민시절에는 발견되지 않다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마추픽추,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산 아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잃어버린 공중도시’라 불린다. 완벽한 석조기술과 철저히 계획된 도시, 그러나 아직까지 왜 만들어졌는지 그 목적과 기능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다.

삼킬 듯 쏟아져내리는 계곡물 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기차에 올라 언뜻언뜻 보이는 만년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와 역 방향으로 흐르는 계곡물의 속도감이 아득한 잉카시대를 순간이동하며 빠져나가는 듯 했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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