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쿼녹스
/이상국
씻은 듯이,
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가
누이가 개울물에 무 밑동을 씻듯
봄날 천방둑에 옥양목을 빨아 널 듯
혹은 밤새 열에 들뜬 아이가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르튼 입술로 어머니를 부르듯
아, 씻은 듯이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인가
- 발견 / 2017년·여름호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에 나는 종종 이 나라 시인됨을 행복해하곤 한다. 천하의 연금술사도 어찌 번역할 도리가 없을 듯한 표현과 단어의 묘미는 한국인만이 쓸 수 있고 읽어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고유영역임에 분명하다. 화자는 ‘씻은 듯이’라는 부사어를 가지고 그 말이 지닌 감각적 느낌을 자신의 경험에 견주어 시화(詩化)한다. 갓 뽑은 뒤 개울물에 씻은 말쑥한 무 밑동을 보았는가. 천방둑에 빨아 널은 새하얀 옥양목을 보았는가.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던 아이가 열을 떨쳐버렸을 때의 후련함을 맛보았는가. 이들 정한들은 불과 몇 십 년 전 비슷한 일을 겪어온 세대들에게 한없는 추억과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씻은 듯이 맑던 비 갠 하늘과 씻은 듯이 청아하던 새소리와 통증으로 부여잡았던 환부도 결국 씻은 듯이 아물던 멍 자국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그곳, 시공을 넘어선 그 곳은 어디인가.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