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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마지막을 위한 의식

 

 

 

빨리 갔다 와야 한다. 사또에게 전화가 오면 낭패다. 평소에도 바쁘게 살고 있지만 잠시 짬에 움직이려면 보통 빠르게 움직여서는 어림도 없는 빡빡한 일정이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발에서 뭔가 헐렁하고 신발과 발이 일체감이 없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많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잠시 멈추고 확인을 하니 여러 갈래 끈 중에 하나가 느슨해졌다. 오래 신어 봉제 부분이 낡아 본류에서 살짝 빠져나오고 있다.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간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신기하다. 나는 무슨 물건이든 하나를 구입할 때 결정에 신중함을 넘어 곤란을 겪는 편이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결정 장애를 의심할 정도인데 대신 나중에 번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신발은 뜻하지 않게 구입하게 되었다. 단체로 어디를 가는 도중에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커피를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발이 누가 잡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커피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왜 그런 가 살펴보니 구두 굽이 깨진 보도블럭 틈에 끼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예쁘고 편해서 잘 신는 구두였는데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고 일행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 억지로 뺐는데 구두굽이 상했다.

대략난감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름거리는데 휴게소 앞에 라틴음악을 연주하며 씨디를 팔고 있는 떠돌이 악사가 보였다. 그 옆에서 가방을 파는 곳이 있었고 신발 노점이 보였다. 당장에 슬리퍼라도 사야하겠기에 거기까지 가보니 구두도 몇 켤레 보였다.

나를 보는 순간 사태를 짐작하고 몇 켤레를 내보이며 권해준다. 그 중 발에 맞는 유일한 사이즈였다. 너무 화려한 반짝이 구두라 망설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사기는 했지만 이렇게 요란하게 생긴 신발을 신고 어디를 가겠느냐고 하며 오늘만 신고 누구를 주든지 버리든지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옷이고 신발이고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색상이나 무늬가 눈에 띄면 일단 거부하고 대개 블랙이나 파스텔톤을 선호한다. 그런데 저런 반짝이 구두를 신고 어디를 다닐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가방을 길게 늘어뜨려 들고 최대한 가리려고 애를 썼다.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하루 종일 신고 다니는 동안 발이 편했다. 집에 와서 긴 바지에 신고 아무 곳이나 다니게 되면서 남의 시선은 잊고 자주 신게 되었고 정이 들었다. 부모님 성화에 선을 보고 떠밀려 결혼을 하면서 툴툴거리다 나중에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고 점점 좋아지는 부부를 보는 격이다. 그동안 잘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버리려고 하니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할 수 없이 신으면서 투덜거리던 생각이 나서 미안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내 발을 편하게 해준 데 대한 고마움도 크다.

힘들다 아프다는 불평도 없이 내 발을 떠받치고 사느라 고생했다는 생각에 나중에는 어떻게 될망정 다른 쓰레기에 함부로 섞이는 게 싫었다. 일어나서 신문지를 가지고 앉았다. 신문지를 펼치고 가운데 놓고 사방을 잘 접는다.

정성스럽게 여러 겹 싸고 풀리지 않게 잘 여미고 마지막에 끈으로 묶으면서 갑자기 아버지와의 마지막 날이 떠오른다. 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맙다는 말로 그간의 인연에 매듭을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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