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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해보기는 해봤어? 가보기는 가봤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30년 전 신문사에 입사했다. ‘기자의 별’이라는 편집국장께서 기사는 뭘로 쓰느냐고 질문했다. 당시 8명의 수습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컴퓨터도 없던 때 13행짜리 원고지에 기사를 쓰던 시절이어서 우리들은 ‘연필로 쓰나? 만년필로 쓰나? 아니면 볼펜으로 쓰나…’ 하며 걱정스런 눈초리로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국장께서는 “기사는 발로 쓰는 거야!” 하시는 말씀에 그때서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현장이나 취재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독자들에게 생동감을 보여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현대의 창업주 아산 정주영의 “임자, 해보기는 해봤어? 가보기는 가봤어?”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납기를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실무자의 보고에 선주를 앉혀놓은 자리에서 “해보기는 해봤어?”라며 과감하게 싸인을 하더라는 것이다. 1984년에는 ‘정주영 유조선공법’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충남 서산간척지구 매립공사는 6.4㎞를 연결해야 했다.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속은 초당 8m에 달해 어려운 공사였다. 현장을 둘러본 정주영은 무릎을 탁 쳤다. 울산에서 대형 유조선을 끌고와 조수를 막는 물막이 공사를 했다. 결국 여의도 면적의 43배에 달하는 옥토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이 돼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다. 청계천 복원을 놓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서울시 간부 공무원들에게 “해보기는 해봤어요? 가보기는 가봤어요?”하며 다그쳤다는 일화도 있다. 정주영으로부터 평생을 배웠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의 정책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숱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제쳐두고 ‘쇠 귀에 경 읽기’처럼 앞으로만 나아간다. 좀 있으면 잘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이례적으로 연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답답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총리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원하는 건 규제개혁의 계획이 아니라 어떤 규제를 어떤 식으로 개혁했다는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해당사자들을 20번이든 찾아가서라도 규제를 풀으라"고 했다. 책상에 앉아 있지 말고 현장을 뛰어다니라고 주문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그렇다. 무턱대고 급격하게 인상한 후유증이 벌써부터 닥쳤다. 가게들이 문을 닫고 취업자가 줄어들었다.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대기업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자조섞인 푸념이 들린다. 견디다 못한 업주들이 다 내보낸 것이다. 이를 기회로 시장이나 마트는 물건값을 다 올렸다. 음식점엘 가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냉면 한 그릇에 8천원 넘는 곳도 있다. 장사가 안 될 건 뻔한 이치다. 최근 고용상황도 최악이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월 평균 14만9천명 증가하는데 그쳐 정부 목표치 32만명의 절반도 안되는 참혹한 성적표다. 김동연 부총리마저 매우 충격적이라며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정책 결정자들은 이처럼 최저임금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는데도 일부 음식료업을 제외하고는 총량으로 봐도 그렇고, 제조업 등에서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고 일축해 왔다. 현장에서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경제수석·일자리수석비서관 등 주요 참모진을 전격 교체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개각도 점쳐진다.

근로시간 단축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OECD의 1/2 수준이다. 일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산성을 따지지 않고 일하는 시간만 줄이면 결국 수입과 일자리 모두 줄어든다. 직종에 따라 상황이 다른데도 너무 획일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다면서 저녁 굶는 경우가 생길지 모른다. 대입정책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이 실험대상이냐고 비난한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정책도 문제가 있으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 국민들은 실험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해봤어? 가보기는 가봤어?” 정책입안자들은 정주영의 어록처럼 현장으로 달려가 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민생이 어려우면 민심이 떠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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