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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오천만원짜리 세상

 

 

 

선풍기 소리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요란한 틈에서도 여인들의 수다는 한여름 잡초처럼 무성하다. 소음 속에서 내가 건진 말을 조합해 보면 누군가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여기저기 잔반을 얻어 짐승을 기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며 가난과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고 살았다. 자식들이 자라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결혼해서 살던 큰 아들이 이혼을 하며 코흘리개 손자 둘을 맡기고 갔다. 어려운 살림에 엄마 없는 손자들을 맡아 기르며 식당일 생수공장 그 외에 시간제로 일을 하며 손자들을 키우고 작은 아들들도 하나씩 짝을 지었고 낡은 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이제 좀 허리를 펴나 하던 어느 날 헤어지면서 엄마가 데리고 간 애들이 보고 싶다고 땅이 꺼지도록 우는 막내아들에게 이다음에 커서 나이 들면 아빠 찾아온다고 겨우 달래 보냈다.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자영업을 하는 막내가 어려운 것 같으니 힘드시더라도 돈 좀 융통해 주시라는 부탁이었다. 다음 날 막내아들이 찾아왔다. 그냥 몇 백만 원 정도 어떻게 만들어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꺼낸 말은 자그마치 시골 집 한 채 값이 다 되는 오천만원이었다. 두 내외는 그런 돈을 만져 본 적도 없었고 다 늙어 그 돈을 만들어 낼 힘도 없었다. 막내아들은 기다리던 대답을 듣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고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도 핸드폰도 받지 않는다고 수소문을 했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막내아들이 어디 머리 식히러 갔겠지 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낫으로 끈을 자르고 오천만원에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포효하는 소리가 온 마을로 흩어졌다. 새끼가 보고 싶다고 우는 자식을 이젠 불러 볼 수도 없는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끝이 없지만 가장 아픈 선택을 한 자식의 얼굴을 끝까지 간직하는 가슴도 부모였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가 경제파탄이라고 한다. 오천만원이라는 돈은 어떤 사람에게는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인지 모르겠지만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겐 그것도 이제 경제활동이 어려운 노년층에겐 불가능한 거액이었다.

만약 그 돈을 해 주었다고 해서 사업이 잘 풀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부모로서는 자신들의 노후가 막막하더라도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끔찍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는 무덤까지 가는 못으로 박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부모 앞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이 고비를 넘기고 좋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워하면서도 한 마디씩 하며 헤어진다. 그래도 참지 그 순간을 못 이겨서 아까운 목숨 제 손으로 끊고 부모 가슴에 못 박았다고.

사람이란 탯줄을 끊고 나오는 순간부터 주어진 고통을 안고 산다. 고통이라는 것도 총량불변의 법칙에 적용을 받는 것인지 살면서 받아야 할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겪게 되어 있다. 지금 힘들어도 내게 주어진 고통을 줄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무게를 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말 또한 남의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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