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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수박의 굴욕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수박을 가리켜 “세상 모든 사치품의 으뜸이며, 한 번 맛을 보면 천사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사랑의 시인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는 “물의 보석상자, 과일가게의 냉정한 여왕, 여름의 초록고래”라 예찬했다.

수박은 이미 기원전 2000년 이 전에 이집트인들이 재배해 먹었을 정도로 역사가 유구하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주로 과일로 먹지만, 사막 국가들에서는 수분 공급원의 역할뿐 아니라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용기의 구실도 했다. 미국에선 치킨과 더불어 빈민층들의 양대 ‘소울푸드’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때로 추정된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고 적고 있어서다. 조선시대엔 수박을 ‘서과(西瓜)’라고 불렀다. 서쪽에서 온 오이 혹은 참외라는 뜻이다. 그때도 귀하고 맛있긴 마찬가지였다. 목은 이색은 ‘수박을 먹다’라는 시에서 ‘마지막 여름이 곧 다해 가니/이제 서과를 먹을 때가 되었다/하얀 속살은 마치 얼음 같고/푸른 껍질은 빛나는 옥 같다’고 읊을 정도였다.

또 여름철에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각별히 수박을 지급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윤기의 시문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성균관 유생들에게 초복에는 개고기 한 접시, 중복에는 참외 두 개, 말복에는 수박 한 개를 준다.”

요즘 시중에서 팔리는 수박들은 모양과 색이 매우 다양해졌다. 대부분의 품종은 무게가 5~11㎏ 나가지만 슈거 베이비나 밤비노 처럼 꽤 작은 품종들도 있다. 과육도 빨간색, 핑크색 또는 노란색이다.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이 요즘 굴욕을 겪고 있다. 대형 수박인 경우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가까이 내렸으나 소비마저 줄어 마트마다 천덕꾸러기 신세여서다. 과일의 여왕 수박의 판매부진은 장마철 궂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원인이지만 최근엔 젊은 가정과 늘어나는 1인가구의 대형과일 기피 현상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소비자의 외면에 재배 농민과 수박이 울고 있는 한 여름이다

/정준성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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