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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경영]한국 노동의 개척자 전태일 열사

 

 

 

 

 

광화문에서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에 위치한 큰 시장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형성된 의류전문 도매상가인 평화시장이다. 평화시장은 서울의 도심지를 흐르는 청계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한에서 내려온 상인들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장이 청계천 인근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 초창기에 청계천 주변에 형성된 판자촌에서 사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피난민들이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재봉틀 한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던 데서 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청계천 변에서 노점상 형태로 의류를 제조·판매한 상인들의 약 60%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그 후 1962년에 오늘날 건물과 유사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으나 인근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 있어 여기로부터 유입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내수공업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영세 업체들을 지탱시켰다.

당시 영세한 의류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하여 있던 평화시장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햇빛도 없는 좁은 곳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만 의존해 하루 14시간의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원단에선 먼지와 포르말린 냄새가 자욱하게 뿜어져 나왔지만 어디에도 환풍시설은 없었다.

전태일은 400여개의 작업장이 닭장처럼 붙어있는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냈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1만 명의 평화시장 노동자 중에서 4천명에 달하던 견습공. 일명 ‘시다’라 불리던 아이들. 이들은 10살부터 15살까지 모두 가난과 배고픔에 쫓겨 평화시장으로 온 아이들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한 아이들의 일당은 단돈 50원. 이는 당시 커피 한 잔 값으로, 밥 한 끼 제대로 사먹을 수 없는 돈이었다. 재봉틀을 돌리던 여공 대부분도 채 20살이 되지 않은 소녀들이었다. 어두운 다락에 갇혀 혹사당하는지 조차 모르고 일하던 아이들의 현실. 그것은 전태일에게 고통이었고 분노였다.

수많은 방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태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970년 11월 3일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현실에 대해 고발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경찰의 방해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부어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평화시장에서 17살부터 시다로 시작해서 재단사가 되기까지 6년여를 일하다가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온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우리는 그를 영원한 노동자의 벗이자 인간 해방의 불꽃이라 부른다. 그의 죽음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노동자들 스스로도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태일 열사의 노력으로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있었고 매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지도 어느덧 47년이 흘렀다. 지금은 그때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여전히 조명 받지 않은 한 켠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오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노동’과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자신들이 희망하는 직업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향해 외친 마지막 절규가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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