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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금(덩)이가 우물에 빠졌던 날

 

무슨 생각이었을까. 고향마을 입구 저만치 자동차를 세우고 옛날처럼 한참을 걸어들었다. 콧잔등 까맣게 태우며 뛰어다니던 그 옛날 단발머리 친구들처럼 낮게 깔린 구름이 오종종 따라왔다. 막 그림자 드리우기 시작한 비학산 자락으로 어린 날의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큰 우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네어귀 첫 집 대문 밖에 자리를 잡은 채, 한 번도 물이 넘치거나 말랐다는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는 속까지 훤하게 보였던, 입구가 넓고 큰 우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몸, 나무로 짠 뚜껑을 꽉 물고 있는 모습이 마치 틀니를 끼운 노인의 입처럼 햇살에 우물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우물의 모습이 마치 고향을 지키고 있는 연로한 어르신들의 모습처럼 쓸쓸해 보인다.

골목마다 아이들 소리로 왁자하던 그 옛날 ‘큰 우물’은 마을 최고의 번화가요 소통의 요충지였다. 남산댁 윤선이가 시집간다는 얘기, 목골댁 장원이가 객지 떠돌다 사고치고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 신광댁 어르신이 지난밤에 쓰러지셨다는 속보까지. 봄이면 앵두가 오소소 매달리던 우물가에서 나누는 눈인사, 안부인사야말로 집집마다 농사 일로 바쁜,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소통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난감이 따로 없어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땀범벅이 된 아이들에게 우물은 갈증을 해소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비교적 우물 깊이가 낮아 아이들도 쉽게 물을 퍼올리던 ‘큰 우물’ 사건은 오늘 같은 여름날 한 낮에 일어났다. 여섯 살이던 여동생이 아이들과 놀며 물을 퍼올리다가 그만 우물에 처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아수라장이던 사건을 마무리 지은 건, 뒤뚱거리며 달려왔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철퍼덕 앉아 소리만 질러대던 산달이 다 된 어머니도 아니고, 마침 집을 지키던 우물 집 언니가 지혜롭게 내밀었던 빨랫줄 바지랑대였다. 물을 시퍼렇게 먹은 동생은 다음날 아침까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축 쳐져있었고 온 집안은 고요했다.

죽다 살아난 여동생 이름은 ‘금’이었다. 어른들이 탯줄을 잘 팔아 세 딸을 낳고 다음에 아들을 낳게 했다고 금이야 옥이야 예뻐하던 금덩이. 세 번째 딸을 낳고서 아들 못 낳은 섭섭함에 서럽게 울던 어머니를 달래며 “딸이라도 우리 금덩이처럼 귀하게 키웁시다” 위로하시며 아버지께서 직접 이름 지어주신 셋째 딸 금이. 빠트린 금덩이도 무사히 돌려보내 준 그 우물은 그러고도 수십 년을 마을 사람들의 갈증과 식수를 해결해주며 장수했지만 펌프, 상수도에 밀려 이제는 고요히 침묵을 지키며 물러나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돌덩이 바윗덩이도 구르며 깎이며 변하는데 하물며 초를 다투며 변해가는 세상사. 인간 삶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시간을 다투며 변하기 마련이다. 해지자 떠 오른, 깎은 듯 반듯한 초승달을 보며 생각한다. 쳐다볼 때마다 조금, 조금씩 이동하며 환하게 웃는 저 달처럼 추억이 다닥다닥 붙은 금(덩)이 빠졌던 그 우물, 고향마을 골목마다의 그 실루엣, 분위기, 나무들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조금 조금씩만 변해가기를. 그리하여, 제대로 곰삭은 그 옛날 추억들 가끔씩이라도 퍼내어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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