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아침시산책]앉아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문희정



그가 앉아 있다



3인용 가죽 소파 한 귀퉁이에

닳고 얼룩진 매트리스 위에

바람 부는 세 발만 남은 식탁 의자에

더럽혀진 2월의 눈밭 위에

쇠로 된 시소의 안장 한 끝에

어느 빌라 에어컨 실외기 위에

골목 어귀 콘크리트 계단 가운데

멋대로 웃자란 강아지풀을 뭉개고

엉망이 된 잔디의 검푸른 물 위에

나란한 두 개의 무덤 사이에

허기진 짐승의 늑골 곁에

말들이 끝나버린 입술 아래에

불가능한 사랑의 복숭아뼈 위에

그리고 다시 소파로

그는 돌아와 앉아 있다

슬픔이라곤 처음인 손님의 얼굴로



얼굴이 소파 속으로 꺼져 있다

얼굴을 머금고

소파가 앉아 있다

 

 

 

 

걸어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낡은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다리와 좁은 보폭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두 팔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당신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짧은 점심에 먹은 식은 밥이 아직도 위에 남아 있다. 현관을 열고 구두를 벗은 후 거실을 본다. 축축한 한기가 돈다. 당신은 가죽소파로 가서 깊숙이 몸을 밀어 넣는다. 다시 온몸에 한기가 돈다. 당신은 앉아 있다. 하루가 매우 빠르게 지나가고 매트리스와 식탁의자, 2월의 눈밭, 쇠로 된 시소의 안장, 에어컨 실외기, 콘크리트 계단이 등과 허리에 밀착된다. 도대체 이 팔과 다리는 누구의 것일까. 그런 생각 속에서 갑자기 얼굴이 뭉개진다. ‘슬픔이라곤 처음인 손님의 얼굴’과 같은 치명적인 생활의 허기다. 얼굴이 소파 속으로 꺼지는 순간, 당신의 표정은 사라진다.

/박성현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