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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문학]개성의 바탕과 개성의 탄생

 

 

 

인간은 왜 딸꾹질을 할까? 물리학을 전공한 생물학자 ‘막스 델브릭’의 명언 “모든 세포는 물리적인 현상보다는 역사적인 현상을 나타낸다”라는 말은 딸꾹질의 기원을 설명한다. 급한 숨을 쉬자마자 성문이 기도를 급하게 막고, 횡경막이 반복 수축하는 현상은 공기호흡과 아가미호흡을 동시에 하는 올챙이가 자주 하는 짓이다. 사람들 중에는 오랜기간 올챙이 적 기억을 깊이 간직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딸꾹질을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진화에 대한 다른 깊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우리 DNA는 수정란이 된 이후 아빠와 엄마의 세포에 쌓인 온갖 역사적 사연을 지우는 DNA세탁을 한다. “임신 6개월 전에 담배를 끊으라”는 산부인과 의사의 권고가 있는 이유는 난자와 정자가 성인의 최근 삶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개성은 수정란의 가능성이 얼마나 망가져서 나오는가가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정란의 재(再)프로그래밍은 주로 난자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 이외의 것들이 하는데, 이는 발생반복설로 설명되는 의도적 원시화 과정이 DNA의 지속성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자보다 10만 배 무거운 난자는 정자를 만나자마자 어린 수정란을 다시 바다에 떠다니는 하나의 원시세포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씨(정자)보다 밭(난자)이 더 중요하다. 난자가 수정란 초기에 하는 리모델링 과정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겨준 성체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생물학적 개성은 원시바다의 단세포 때부터 올챙이처럼 생존하던 시기를 지나며 고생했던 기억을 DNA에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후성유전학적 오염들(부모가 세포에게 남긴 눈물겹도록 슬프거나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기도 하며 보릿고개를 견디는 등의 기억들)이 쌓인 DNA를 엄마 뱃속에서 지우고자 노력하지만 다 지우지 못해서 생긴다. 이것이 우리 개성의 바탕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난자가 우리 DNA를 많이 초기화 해준 노력 덕분에 우리는 부모의 질병도 유전되지 않게 안전장치를 달고 태어난다. 또 자기 한계를 벗어난 후천적인 노력 덕분에 자기 DNA를 새롭게 바꾸며 살고 있다. 개성의 탄생은 자기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호기심(로맨스)을 필요로 한다. 개성(스타일)의 탄생은 우리가 자기 두뇌와 DNA, 체질, 성격, 인품, 실력 등이 바뀔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만큼 어떤 놀라운 아름다움(뷰티)에 도달하게 된다.

‘러셀’은 “로맨스(호기심) 없이 스타일(개성)을 만들 수 없고, 스타일 없이 뷰티(아름다움)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개성의 성공은 그 호기심의 방향과 호기심을 푸는 행동방식에 있다. 빈 캔버스에 어떤 색으로 바탕을 깔고 어떤 구도를 잡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우리 몸과 마음에는 다양한 물감과 화구가 준비되어 있다. 호기심과 야망의 색, 권력과 부귀의 물감, 사랑과 질투의 터치, 호감과 적대감의 테레핀, 공격과 방어의 나이프를 써가며 개성은 완성되어간다.

개성의 탄생에 대한 연구에서는 이타적인 소속감의 욕구와 이기적인 자존감의 욕구가 후천적 개성을 만든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노력을 하다가, 또 이기고 싶고 더 잘 나고 싶어서 경쟁하다보니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어울리게 되고, 또 편을 가르고 공격과 방어를 하다 보니 우리 두뇌와 DNA가 그 관계와 그 편에 맞게 바뀐다는 얘기다. 이는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발달 단계에서 자아실현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먼저 필요한 두 가지 욕구라는 기초공사에 관한 얘기이다. 누구랑 소속감을 느끼고 어디서 어떻게 자존감을 느낄 것인가?

우리는 자아실현이라는 막연한 꿈을 위해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공무원은 공무원답게 보이고 작가는 반항아처럼 보이게 된다. 선천적 개성 DNA에 직업병이라는 후성유전체가 달라붙는다. 진정 자기다운 개성의 성공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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