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어미의 귀환

 

 

 

폭염이 이어진다. 어차피 여름은 더운 철이니 참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땀이 눈으로 들어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덥다는 말이 새어 나온다. 사람이야 정 더우면 세수라도 하겠지만 털 가진 짐승들은 요즘 같은 더위가 더 힘들 것 같다.

털 가진 짐승 얘기를 하자면 먼저 개나 소를 떠올린다. 모두 사람 곁에서 살면서 많은 도움을 주는 동물들이어서 더 정이 간다. 충성심 또한 대단했다. 목숨 바쳐 주인을 구하는 개나 끝까지 새끼 낳고 일을 하면서 나중에 팔려가는 소는 귀중한 재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닭은 가축이면서 조금 가볍게 여겼다.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 또는 닭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닭이 그렇게 머리 나쁜 동물이라는 생각을 순간에 불식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마 이맘때보다 조금 빨랐던 때로 기억한다. 매일 같이 알을 낳던 닭이 알을 낳지 않기 시작했다. 닭은 한 번 알을 낳기 시작하면 배 안에 갖고 있는 알은 낳고 한동안 쉬게 되어 있는데 그 영리한 암탉이 알을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닭이라고 해서 무조건 알을 낳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낳은 알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닭은 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비밀 장소에 알을 낳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닭에게 당하고 물러날 사람은 없다. 알을 다른 곳으로 다니며 낳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계란을 앞뒤로 구멍을 내고 내용물을 다 빼낸 다음 그 안에 모래로 채우고 구멍을 막은 다음 알을 낳는 둥우리에 넣었다. 이 가짜 알을 밑알이라고 하는데 닭은 이 밑알을 자기가 낳은 알이 잘 있는 것으로 알고 다시 그 장소에 알을 낳는다.

그렇다고 모든 닭이 지능이 똑같고 생각이 없다고 보면 착각이다. 닭이 알을 숨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농번기에 닭을 살펴 볼 여유가 없어 닭을 살펴보지 못했다. 한동안 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며칠 지나서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어미닭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뒤쫓아 병아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어미 닭이 앞장서서 수많은 병아리들이 뒤를 따라오는 장면은 어디서도 다시 못 볼 명장면이었다.

그동안 누가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던 닭이 몰래 알을 낳아 부화시켜 병아리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고 어머니는 신기해서 닭을 쓰다듬다 혼자 알을 까서 기르느라 살이 빠져 홀쭉해진 닭에게 우선 물을 떠다 주고 쇠죽 끓일 때 넣어주던 콩을 한 움큼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어미 혼자 기른 병아리는 병아리 장수에게 산 병아리보다 훨씬 건강하게 잘 자랐다. 식구들도 알아보고 따라다니기도 하고 비가 오면 움푹 패여 물이 고인 땅도 용케 알고 물만 먹고 잘 피해 다니고 겨우 젖 떨어진 강아지하고 싸움도 하며 잘 자랐다. 병아리가 어미닭이 되어 알을 낳고 또 병아리를 까는 동안 몇 대를 잘 사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닭대가리라는 말이 사라졌다.

가끔 치킨을 먹을 때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 때 알을 도둑맞기도 하고 죽임을 당할 때 머리 좋은 닭은 주인의 얼굴과 음성을 기억하고 미움을 품지나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초복에는 친한 사람이 생닭을 가지고 와서 백숙을 해 먹었지만 돌아오는 중복에는 그 때 어미닭이 떠올라 다른 음식을 먹을 생각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