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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현관입구 앞에 아파트 놀이터가 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각부터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볕 좋은 날엔 으레 초등학생과 유치원 어린이들이 몇몇의 보호자의 보호아래 즐겁게 뛰어노는 곳이다.

깔깔대며 뛰어노는 모습에 웃음짓게 하는 선한 공기로 반짝이는 장소이다. 그 곳은 어린이를 위한 신성의 기운이 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이라 나름 생각한다. 지치도록 신나게 놀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팽개쳐진 분홍자전거를 지켜주기도 하고,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 걱정도 주제 없이 더러 하며, 누군가의 이불이 햇볕바라기를 하러 냉큼 놀이터 울타리에 걸리기라도 할라치면 오지랖 넓게 이불은 개인공간에 수줍게 걸어 주십사 탄원하기도 하는 극성 놀이터 지킴이라 내심 생각하던 바다.

어느 날인가 들어오던 길에 현관에 이르렀을 쯤 얼핏 놀이터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가 거슬린 장면이었다. 대놓고 보자니 민망하여 못 본 척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맘속의 의협이 꿈틀하고 솟구쳐 팽팽한 긴장을 무장하고 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얼굴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다가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들에게 어른이랍시고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상식의 도덕과 놀이터의 정의에 대한 한바탕의 훈계를 하고 쫓아보내고 나니 드는 생각이 복잡했다.

내가 말할 당위를 가졌을까. 저들 맘에 대꾸하지 못한 정당성은 없었을까. 그들은 내 말과 생각을 수용해서 그 자리를 떠난 걸까.

집에 들어와 딸에게 에피소드를 열정적으로 전달하고 나니 딸 왈 “내버려두지. 그런 애들 천지야. 엄마한테 대들면 어쩔 뻔 했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구시대적 고루함을 부끄러워해야 하나.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어른의 비겁함이 미덕이 된지 오래되었다. 성장은 개인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이지만 먼저 경험한 어른이 자신의 경험을 가르치고 젊은이를 이끌어야 사회가 보이지 않게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라 배웠다.

이성의 끌림에 자유의지를 발휘할 연령이 아니라는 생각은 나만 했고 공공의 장소에서 어린 학생들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는 당당한 표현의 자유를 민망해하는 건 나뿐이었던가 싶다. 자유는 그 한계를 지우기 어렵고 사회가 개인을 쫓아다니며 자유와 방종을 일일이 교육하기 어렵다. 민망하기에 가정에서도 진지한 성교육의 구체성을 띠고 솔직한 대화를 어려워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많은 것이 제공되며 수용할 수 있는 과도기는 짧다. 자본의 수단으로 미디어 매체에서는 대중에게 빨리 접근하고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가릴 것 없이 성(性)의 바닥까지 표현한다. 이런 매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아이들은 옳고 그른 것의 가치를 판단할 기준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여과 없이 위험한 정보를 받아들인다.

쾌락이 주는 달콤함은 쉽고 가깝지만 책임을 간과할 수 없음을 젊은 혹은 어린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어른들이 지나치게 걱정해서 자신들의 성적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몰아내지 않고 정보가 전부 옳은 것이 아님을 판단할 시간도 가졌으면 한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애정표현 하는 것을 자유가 허락하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개인이 타인의 자유의지를 옳다 그르다 하기에는 판단의 오류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것이라는 섣부른 평가는 더욱이 위험할 수 있다. 행동의 결과를 알고 책임감을 더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나 숨어서 하는 일이 옳은 것이 아닐 바에야 드러내는 것이 더 솔직해 보이는 시류를 기성세대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본성은 왜 가르치지 않고 숨기려하는 위험한 것에 더 끌리는걸까. 어른들이 교묘히 숨겨놓은 위험한 덫에 걸려든 아기 새들에게 왜 너희는 이 덫을 피해가지 못했냐고 다그치는 부끄러운 어른이 스스로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큰소리를 낸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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