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전면(正面)
/권대웅
어느 순간 와락 진저리쳐질 때가 있다
허리를 굽히고 마당을 쓰는데
머리 위로 쓰윽 이상한 바람이 지나간 것 같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무 일 없듯이 가을 하늘 너무 푸르고 맑을 때
힘이 없는데 정면으로 맞장떠야 할
어느 한순간이 올 때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뙤약볕 시골길
흰 적막이 가득 들어 있을 때
맑은 정신으로 눈이 떠진 새벽
오로지 홀로 나와 맞닥뜨릴 마지막 시간이 떠오를 때
홀연 엄습하는 생의 낯섦을 견디며
불안한 영혼들이 숙연해지고 고요해져 간다
-시집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문학동네, 2017)
어렸을 적, 늘 같은 시간이면 마당에 찾아오곤 하는 새 한 마리를 보고 할머니는 ‘죽은 영혼이 새가 되어 찾아오는 것이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자주 등 뒤가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쭈뼛해질 때가 많았다. 세상이라는 섬에 나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절망까지. 그러나 한 번도 맞장 떠볼 용기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뒷걸음치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시의 화자는 ‘홀연 엄습하는 생의 낯섦’까지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얻게 된, 삶을 관통한 고요한 철학적 사유를 우리에게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다. /김밝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