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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여론공중계층과 한맥논단

 

 

 

얼마 전 한 정치인의 죽음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하필 병환 중인 자신의 어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 사건이었다. 평소 그는 “그나마 다른 정치인들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했던 믿음이 있었던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며 애도했고, 방송에서도 그동안 그의 촌철살인 어록들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거들고 나섰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찬양일색의 방송을 해서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은 판단의 냉정을 잃은 듯하다. 한 취재기자의 마이크에 선 한 노인은 “고작 껌값에 훌륭한 정치인이 아까운 목숨을 버리다니…”라며 관대했다. 또 많은 이들이 문상하면서 마치 자기 부모나 형제를 잃은 것처럼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그의 도덕성은 결벽증에 가깝다”고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하기를, 부정한 일에 연루된 사람이지만 그래도 다른 정치인들보다는 낫지 않았느냐고들 한다.

과연 그런가? 정말 그런 것인가?

아까운 인물이긴 하겠다. 그러나 그의 생이 마감된 건 더도 덜도 아닌 거기까지로 보면 적당할 것이다. 애써 찬양도 비판도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견과 갈등, 반목과 질시 그리고 편 가름의 원인은 지나침에서 오고, 그것은 판단의 올바름을 저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차악(次惡)이 최악(最惡)보다 낫다고 해서 악(惡)을 선(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정의(定義)란 아직도 그 정도 수준인 것인가?

이 대목에서 “한 사회의 여론공중계층이 두터울수록 그 사회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매스컴의 동향과 의도에 휘청거리지 않고 안정되어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2년 전 이맘 때 열었던 한맥논단(韓脈論壇)의 취지를 다시금 곱씹으며 깊은 참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를 위해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했느냐고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명은 흡사 인류가 불(火)을 발견한 것과 비견할만하다. 이미 그 기능의 유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세계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산불과도 같은 화재의 위험처럼 SNS의 악용으로 발생하는 불행들도 많다. 특히 꼬이고 비틀려 확산된 기획여론으로 우리 대중들은 너무나도 쉽게 더불어서 휘청되며 술렁거리게 된다. 국민적인 관심이 한동안 쏠려있는 중대사건을 덮기 위해 또 다른 특종들이 기획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유명인들은 그 여파로 그들의 이름값을 쉽게 목숨으로 대신하는 사건들도 드물지 않을 정도다.

한 사회에서 밝게 눈 뜨고 현실을 통찰하며 대중들에게 진실을 밝히면서 목숨을 걸고 정론(正論)을 펼치는 이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전함을 유지할 수가 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욱 안정을 찾으며 국가와 사회의 미래번영을 기약하기 위한 초석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지혜롭고 양심적인 정론가들의 활동성과 그 계층의 두터움의 정도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들 계층이 곧게 서있을 때 고질적인 국론분열의 원인들을 통찰하게 하고 대중들이 그릇된 여론몰이에 성급하고 감성적인 대응을 자제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국민이 직면할 때마다 국익여부와 다각다면적인 진위판단의 진중성을 돕고, 결국은 국민화합과 세련된 국가공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여론공중계층 확대에 일각에서나마 기여하기 위해 현시대에 생존하는 큰 스승들과 지성들을 모시고 함께 깨우치고 밝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한맥논단’을 연 바 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대주제로 설정한 것은 ▲첫째, 우리는 누구인가? ▲둘째, 우리가 서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셋째,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이다.

과거 서릿발 같은 기개로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며 지켜갔던 기라성 같은 선조들이 우리의 역사 속에 많이 남아있다. 한맥논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여론공중계층 확대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감히 내세우며 지난 2년간의 시간을 회고하면서 창피함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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