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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흙손

 

대지가 가마솥이다. 도로는 이글거리고 식물도 생기를 잃고 축 쳐져있다. 마을의 큰 나무아래 평상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박을 자르고 장기도 두면서 한낮의 더위를 견디던 풍경은 오간데 없고 지금은 마을에 더위 쉼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열섬현상 때문에 온도가 치솟기도 하지만 체감온도와 온도 상승요인이 건축물 즉 주택의 구조와 건축자재도 영향도 적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이야 대부분이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생활하지만 몇 십 년 전만해도 주택의 대부분은 한옥이었다. 우리 집은 일자형인 안채에 마당 끝에 사랑채가 있고 안채를 조금 비껴 외양간과 헛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수 집을 지으셨다. 뒤뜰에서 황토를 퍼 나르고 황토에 볏짚을 썰어놓고 잘 비벼서 갠 후 벽돌 틀로 벽돌을 찍어 마당에 쭉 넣어 놓은 후 벽돌이 잘 마르도록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면서 단단히 말려 벽을 쌓아 올렸다.

목재는 논두렁 언저리에 있는 미루나무를 베어 껍질을 벗긴 후 충분히 말린 다음 대들보와 서까래를 세우고 흙집을 지으셨다. 아버지의 땀과 노력, 매미의 노래와 볏짚이 발효되는 냄새와 흙을 퍼 나르던 우리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집이다.

황토벽돌을 쌓고 고운 흙으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질펀한 흙을 흙손으로 퍼 올려 쌓아올린 벽에 마무리 작업을 한다. 흙손에 남은 흙은 흙받이로 쓱 닦아내며 표면이 매끄럽도록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도화지를 펼쳐놓은 것처럼 평평한 담벼락이 되었다. 때로는 흙이 우수수 쏟아지기도 했지만 나는 아버지 작업하시는 모습이 신기했다. 매끄럽게 미장한 벽에 나무와 집과 친구들을 그렸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부엌에는 시커멓고 윤기가 흐르는 가마솥이 걸렸다. 쇠죽솥이 가장 컸고 그 다음에 물솥 그리고 밥솥과 그 옆에 국솥이 작았다. 흙벽돌로 쌓고 황토로 마무리한 부엌은 어머니의 영역이었다. 아궁이 언저리에 균열이 생기면 불을 땔 때 그 틈으로 연기가 나왔고 검게 그을린 부엌을 수시로 흙을 발라 단장하곤 하셨다. 아궁이 앞에 커다란 나뭇간이 있었고 나뭇간 옆에는 찬장이 그리고 광이 있어서 염장음식이나 아버지를 위한 밀주가 익어가곤 했다.

뒤란에는 임시 아궁이를 만들어 여름에는 밖에서 불을 집혀 음식을 만들곤 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놀다가 밤이슬이 내리면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 자곤 했는데 그때의 여름은 이렇게 덥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기야 잠들기 전 도랑으로 달려가 멱을 감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 기술이 세상에서 제일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들마루도 만들고 외양간도 짓고 뚝딱뚝딱 아버지 손만 가면 삐거덕거리던 것이 감쪽같이 멀쩡해지곤 했다.

대들보를 세우고 상량식을 하면서 즐거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흙집은 보온이나 보습 그리고 난방 등 단열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감기나 몸살 등 잔병치레를 거의 모르고 컸던 것을 보면 환경이 쾌적했기 때문일게다. 숨 쉬는 집에서 살았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자연친화적 생활을 한 것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자재를 이용해 황톳집 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아무래도 흙이 더운 열기를 품고 있다가 서서히 식으니 더위를 피하는 대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토피 등 피부염 같은 질환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여건이 허락된다면 황톳집에서 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한옥에서 앞문과 뒷문 열어 바람의 통로를 내어주고 뒤란에서 바스락대는 댓잎소리 들으며 낮잠을 즐기는 상상만으로도 더위가 조금은 물러서는 것 같다. 입추도 지났으니 머잖아 가을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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