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초(茜草)
/조정권
초두 변에 서녘 西,
해질 무렵 풀 끝에 붉은색 비친다 해서 천초.
풀 끝에 더 뻗어가고 싶었던 붉은빛 거센 숨 있다
비장하다
천초는
뿌리까지 붉다
서리 깔리면
뿌리 속까지 붉다
땅속까지 환하게 붉다
- 조정권(1949~2017) 시인의 시집 ‘떠도는 몸들’ 중에서
비장하게, 천초는 풀 끝에 더 뻗어가고 싶었던 붉은빛 거센 숨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뿌리까지 붉고, 서리가 깔리면 뿌리 속까지 붉어진다고 한다. 마침내 그 붉은빛이 땅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환하게 불을 밝힌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붉은빛 초심(初心)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던 우리의 붉은빛은 어디로 갔나. 서리가 아니라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고 흩날리는 우리의 붉은빛은 아니었던가. 어쩌면 우리의 빛은 붉은빛이 아니라 이미 검은빛으로 변해있지는 않은가.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