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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광복과 항복

 

 

 

벌써 73주년 광복절이다. 내 목숨보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다 희생하신 의사 열사들과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 활동하신 분들의 공로로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 살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압제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는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나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암울한 역사를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일제의 만행을 몸으로 겪으며 사셨던 분들이라 그 시절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부터 커지고 감정이 격앙되는 모습을 보이신다.

일 년 내내 고생하면 농사라고 지으면 쌀은 다 빼앗아 간다고 한다. 조상님 제사에 메를 지을 쌀이라고 해도 소용없고 자리보전하고 앓는 노인의 방 돗자리 밑에 깔아놓은 벼도 걷어 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동생을 보며 여러 식구 먹을 감자를 까면 놋수저는 한쪽이 옴폭하게 닳고 손가락은 까맣게 물이 들어 어느 날은 동생이고 감자고 다 내버리고 개울에 가서 놀다 날이 어두워졌다.

막상 놀기는 했지만 집에 들어오려니 혼날까봐 무서워 집 앞 뽕나무 밑에서 울고 있으니 할머니가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셔서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며 그 때 질려서 감자는 지금도 좋아하지 않으신다.

놋숟가락도 다 빼앗아가고 숟갈총이 짧게 만든 수저를 주고 산에 가서 송진 받아오라고 해서 솔밭에 갔다가 송충이에 놀라 도망치다 넘어져 치마가 찢어져서 정강이도 까져서 아픈 것은 말도 못하고 몰래 치마를 꿰매던 말씀을 하시자 다른 친구 분이 말을 받는다.

어릴 때 바닷가에 사셨는데 하루 종일 밖에서 김을 말리고 공출 마감이 임박하면 목표량을 채우느라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잠도 못자며 김을 만들면 단 한 장도 못 먹게 하고 김을 빼앗아 갔다고 하시며 숨을 몰아쉬시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래서 그놈들 지금 벌 받아서 툭하면 태풍불고 지진 나고 하는 거라고 하시며 나부터 착하게 살아야 나중에 자손들 그런 일 안 당하고 산다고 하신다.

재난이나 개인적인 고통이 조상들의 삶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에 얼마나 모진 고생을 하셨으면 지금도 일본에 천재지변이나 다른 재난이 닥치면 꼭 그 때 못 되게 굴어서 지금 벌 받는다고 하신다. 그러나 두고두고 우리 민족사의 수치로 남은 일은 다름 아닌 을미사변과 종군위안부 문제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는 모습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도 일본을 대하는 감정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일전 축구를 할 때는 전 국민의 시선을 묶어둔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일본과의 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로 두 나라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광복 73년을 지내면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풀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안타깝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도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한두 분씩 세상을 뜨시고 독도 문제는 점점 더 그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광복 몇 주년 기념식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한 진정한 그들이 항복을 했어도 우리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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