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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개관사정(蓋棺事定)’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두보(杜甫)는 ‘君不見簡蘇?’에서 ‘나무는 백 년을 살고 죽어야 그 나무로 거문고가 만들어지며, 사람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다(百年死樹中琴瑟 丈夫蓋棺事始定)’고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인 ‘개관사시정’(蓋棺事始定, 蓋棺事定)은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관(棺) 뚜껑을 덮고 나서야 그 사람을 올바르고 정당(正當)하게 평가(評價)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참 모습을 보려면 그의 말년의 행보를 보라는 깊은 뜻도 있다.

독일 속담에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Ende gut, Alles gut)’라는 격언(格言)이 있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번안해서 쓴 희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생(人生)’에 있어서 초지일관 상도(常道)의 험난함을 선인(先人)들도 숙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속세에 태어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 속에서 제대로 그 스스로의 자각된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보는 이들마다 ‘오만가지’를 생각하는 각자의 시선에서 본 세상의 그 진리는 깊고 넓다.

시장만큼 사람들의 치열함을 볼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시장에 가서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 ‘삶(生)의 현장’에서 그들이 세상을 보는 생각의 깊이는 존엄하게 느껴진다. ‘무릇 시장이란 팔 물건이 있으면 사람이 몰리고 그 물건이 다 팔리면 사람들이 떠나가서 파장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시장의 이치는 세상만사의 진리일 것이다.

‘인생’(人生)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길이며, 그 길은 늘 거친 것이다. 굽어보이는 길이 많은 것이다. 사마천이 말하길 ‘모든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라 했다.

‘길(道)을 넓히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지 길(道)이 사람을 넓힐 수 없다(人能弘道 非道弘人)’고 했다. 길을 넓히는 것은 하늘의 도움(天), 시(時), 공간의 이치(地), 이타심(利他心)의 진정성(人)이 없으면 실로 이루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진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지만 찾기가 어렵다.

청년시대의 두보(杜甫)는, ‘망악(望岳)’이란 시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이렇게 담았다.

‘가슴을 트이게 하는 층층 구름이 생겨나고, 눈을 부릅뜨니 둥지로 돌아가+는 새가 들어오네.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주위의 작은 산들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胸生曾雲, 決?入歸鳥.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산(山)을 세찬 바람 속에서도 올라가는 것은 정상에 올라서기 위함이지만, 산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는 보는 것은 정상에서 그 아래를 관망함으로 세상의 작음을 느끼기 위함일 것이다. 작음은 늘 위태함을 경계하면서 지혜의 샘물로서 겸손한 마음자세를 가지게 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않음으로, 위태함을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산다. ‘안빈낙도(安貧樂道),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살아가는 것은 선인들의 지혜였다.

늘 한결같은 평상심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사를 살아가는 그 도덕이자 사람의 지혜이다. 이렇게 연일 폭염이 계속되지만 이제 곧 가을은 오는 것이고 또 가을이 저물어 세찬 겨울을 맞이함은 매화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기다림은 또 다른 하나의 희망이다.

자연은 늘 이렇게 윤회하면서, ‘기다림’의 순리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흥(興)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고 병들고 병이 들면 죽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같이도 보이지만 세상은 우연과 같은 필연의 운명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행들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최근 많이 보고 있다.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찾아 방황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행복한 것을 찾아가는 지혜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걱정을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주 작은 것이다. 걱정보단 지혜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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