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엄정옥
공원 벤치에 다소곳이 앉은
청년의 목에 무언가 걸려 있다
산뜻한 청색줄이다
청년 실업자 53만 명의 이 팍팍한 시대에
용케도 직장을 잡았구나
가까이 다가서니
눈코입이 한쪽으로 몰린
흐릿하게 촉수 낮은 눈빛
목걸이에는 커다랗게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언제쯤 이 세상에 입사했을까
언뜻 보아 이십 년은 넘어 보이는데
완벽과 속도만이 최고인 이 치열한 현장에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떠밀려 왔을
고군분투하며 걸어왔을
이름표 하나에 자신의 직함을 걸어둔
명예퇴직도 정년도 걱정 없는
‘이세상지구주식회사’
청년의 입가에 말없이 번져나는
저! 비非웃음
-애지 / 2017년·겨울호
청년실업률 고공행진이 이 시대의 화두다. 말쑥한 와이셔츠 앞깃에 목줄을 늘어뜨리고 삼삼오오 점심 식당을 찾는 발길 분주한 젊은이들의 모습엔 당당함이 묻어난다. 같은 또래에겐 선망의 대상이요, 미취업 자녀를 둔 부모들에겐 부러움과 동시에 속상함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그렇게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표식인가 했는데 어쩌나! 안타깝게도 장애를 갖은 이가 분명하니, 이십 대 청년인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입사한 것이라는 시선이 따듯하고 정답다. 그러나 슬프다. 오늘까지 살아내도록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까. 낯선 편견들에 시달렸을 테고 사는 것 하나하나가 고군분투였겠지. ‘이세상지구주식회사’에서 이름이 곧 자신의 직함이며 명예퇴직도 정년도 걱정이 없다 한 것은 해학적 표현, 그러므로 그 입가의 웃음이 어찌 웃음이겠는가. 비웃음, 아니 비非웃음이 분명하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