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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성 따라 달라지는 ‘발효’… 우리 삶과 닮은 점이 매력

창생공간② 생활적정랩 빼꼼
낙후지역 수원시 서둔동에 둥지
문화기획자·예술가·대학생 모여
누룩·술 등 발효 관련 제조·제작

재개발로 변해가는 동네 기록
‘잡초도감’ 작업 올해도 진행

 

“3년차 넘으니 ‘빼꼼’ 찾는 주민들 많아져 사랑방처럼 이용”

임재춘 빼꼼 대표

소모적인 일로 치부되는 살림

가치 찾을 수 있는 활동 고민

‘발효’로 다양한 연결고리 찾아

 

되게 지은 밥을 너른 채반에 한 김 식힌 뒤, 온기가 있을 때 누룩을 부어 잘 섞이도록 비벼준다. 만들어진 재료들을 소독한 용기에 담고 같은 양의 물을 부어준다. 입구를 면보로 덮어 고무줄로 고정한 뒤 따뜻한 곳에 4, 5일간 두면 재료가 가라앉고 액체가 위로 올라오면서 발효가 된다. 발효된 재료를 거른 후 병에 담아 입맛에 맞을 때까지 숙성해 먹는다.

 

창생공간 두 번째로 소개할 생활적정랩 빼꼼의 임재춘 대표는 본인이 직접 만든 단양주 레시피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면 누구나 같은 맛의 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균 또는 시간과 노동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임대표의 말에서 발효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숙성한 지 한달 정도 지났다며 임 대표가 건넨 술은 식초처럼 시큼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더해져 입맛을 돋운다. 낯설지만 한번 먹고 나면 또 생각나는 술 맛에서 빼꼼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제작자가 들인 시간과 정성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만들어내는 발효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이처럼 빼꼼은 발효를 주제로 우리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이 펼치며 서둔동과 공존하고 있었다.

 

수원 서둔동과 탑동을 포괄하는 행정동 서둔동은 권선구 내의 타 행정동과 비교해 지역도 넓고 인구(4만2천명)도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인근에 서울대학교 농대와 농촌진흥청을 기반으로 형성된 상업지역이지만, 두 시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골목은 활력을 잃었다.

수원 비행장의 소음도 지역이 낙후된 원인으로 꼽힌다.

문화기획자인 임재춘 대표는 동네연구 및 지역과 연계한 문화적 활동을 하고자 2015년 서둔동 상탑로 한켠에 ‘커뮤니티스튜디오 104’ 문을 열었다.

20년간 정육점으로 쓰였던 이 곳은 약국, 유치원, 문구점, 교회 등이 인접해 있어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주변에 문화공간이 없다는 점이 임 대표의 시선을 끌었다.

이곳은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됐으며 이후 2016 경기문화재단 창생공간 조성 사업과 인연을 맺으며 ‘빼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누구나 고개를 ‘빼꼼’ 내밀며 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임대표의 바람이 담겨있다. 이곳은 이름처럼 주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발효를 주제로 다양한 제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 활동

빼꼼의 주요 활동은 누룩, 발효종, 술, 식품, 발표조미료 등 발효와 관련된 것들을 제조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리서치&아카이브 및 제조 과정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문화적 활동도 병행한다.

술빚기나 빵만들기 등을 주제로 한 만들기 프로그램들은 일반 문화센터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빼꼼에서 지향하는 것은 문화적 키워드로서 발효를 해석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임재춘 대표를 비롯해 백소민, 이아람, 이윤지 씨가 빼꼼의 작업자로 함께했다.

문화기획자, 예술가, 대학생으로 구성된 이들은 자신만의 기획으로 발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백소민은 발효를 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동을 인간의 관계맺기와 연결시켰다.

바나나잼과 딸기벌꿀술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작업자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고, 이 과정은 ‘관계발효시키기’를 주제로 한 글로 완성돼 빼꼼이 발간하는 매거진에 실렸다.

 

 

 

 

이렇듯 각각의 작업자는 발효를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결과물을 완성했으며, 격월로 열린 시감회 ‘절호의 시간’을 통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식초와 빵, 치즈를 만들어보는 발효학교를 기획, 6월에 이어 9월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 아카이브 작업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2016년 개관과 함께 동네의 발효문화 아카이빙을 진행했고 발효와 관련된 생활기술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을 섭외해 매거진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도 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지역주민 김미영 씨는 ‘아줌마 기획자’로 올해부터 빼꼼의 작업자로 참여하게 됐다. 서둔동 아이들과 동네를 탐방하며 미디어 동화책을 제작한 ‘헨젤과 그레텔을 찾아라’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재개발로 인해 변해가는 동네의 현재를 기록하는 작업도 흥미있는 소재로 진행했다. 골목 곳곳에 피어있는 잡초를 기록하고 드로잉으로 남기는 ‘잡초도감’이 그것이다.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잡초도감은 올해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민경화기자 mkh@

 


 

 

 

 

 

“소모적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빼꼼에서는 나름의 가치를 갖고 의미있는 결과물들로 완성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재춘 빼꼼 대표는 공간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문화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했던 임재춘 대표는 결혼과 함께 삶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출산과 육아가 시작되면서 그가 느낀 것은 사회적 단절과 상실감이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느꼈을 이 고민들을 발효를 통해 풀어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임재춘 대표는 “주로 여성들이 도맡는 살림은 가정에서 필요한 영역이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소모적인 일이라고 치부된다. 따라서 여성과 가장 가까운 살림이라는 영역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고민했고, 그때 떠오른 것이 발효였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발효 역시 소모적이라는 개념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발효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소셜한 주방을 기획했고, 빼꼼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임 대표는 “발효라는 주제를 가지고 운영을 시작했지만,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처음 1년간은 다양한 균을 만들고 제작품을 완성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만들다 보니 발효라는게 완성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문화의 다양성, 계층의 다양성과도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임 대표를 포함한 4명의 작업자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은 발효작업 진행하고, 주민들과 공유하는 작업까지 이어졌다.

 

 

 

 

임 대표는 “지식이나 기술 공유하는 워크숍 끊임 없이 했고 과정들을 매거진으로 남겼다. 지금까지는 외부에서 우리 작업에 어떤 호감을 가지는 지 살펴봤다면, 올해는 보다 넓게 공유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빼꼼의 문을 연지 3년차가 넘으면서 달라진 것은 주민들이 종종 이곳에 들러 사랑방이나 쉼터처럼 편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름처럼 빼꼼 고개를 내밀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 대표는 ‘빼꼼’이 지역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임 대표는 “이 곳은 발효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됨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펼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빼꼼을 찾아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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