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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바람 그리고 태풍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 차례 어떤 난장을 치려는지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 줄 끈이 연신 난타 중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제 19호 태풍 솔릭의 경로를 예고하면서 위력이 상당할 이번 태풍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마다 한 번쯤은 찾아오는, 대기의 흐름이 한 곳에 쏠리면서 강력한 힘의 기둥을 세우고 갖가지 피해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태풍. 그런 태풍은 자연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여러 가지 꼴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느닷없이 휘몰아치며 삶의 뿌리까지 흔들어놓는 갖가지 사건 사고 또한 인생의 태풍이 아닐까 싶다.

가족친지들 다 모여 화기애애하게 파티를 즐겼던 지난 어머니 칠순잔칫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돌아오는 경부선 고속도로에서 잠시잠깐의 실수로 내 자동차는 굉음을 울리며 곤두박질쳤다.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 안에서 쉼 없이 울리는 비상벨 소리, 출동경찰의 끊임없는 질문, 여전히 질주하며 스치는 자동차들, 연거푸 들이닥친 견인차끼리의 경쟁, 넋을 잃고 널브러진 가족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내 인생 중반의 태풍은 자동차를 폐차하고 몇 달간 후유증 치료를 하며 흐트러진 일들을 재정리하느라 전전긍긍했던 날들로 서서히 마무리 되어갔다.

하지만 어머니께 들이닥친 노후의 태풍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하다. 수십 년 남편 의지하며 살아오시다 맞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몇 달을 홀로 끙끙 앓으시다 결국엔 위암 판정을 받고 위전절제의 수술을 감내해야했던 어머니. 수술 후 십 년 이상을 소화와의 전쟁, 불면증과의 전쟁을 치르고 계시다. 밤 열시 넘어 울리는 전화기 너머 맥없이 흘러나오는 어머니 목소리.

“야야, 잠이 이래 안 와가 어째 사노?”

“저녁에 먹은 게 꽉 막힌 것처럼 명치끝이 이래 답답하데이”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잘 수가 있다는 어머니 목소리엔 외로움이 그득하다. 간혹 들러 어머니 옆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보면 약 없이도 편안하게 주무시는 어머니를 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어머니 불면증의 원인은 외로움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애지중지 길러낸 자식들 떠나보내고 홀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부모님의 가장 무서운 태풍은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외로움이라는 태풍이 아닐까 싶다.

자연의 태풍엔 강풍주의보, 예상 강수량 또는 우려되는 침수 피해 등등 다양한 예보가 있다. 충분한 대비를 했을 때 그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갖가지 비상 대비를 한다. 살다 맞는 인생 태풍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예보 없이 들이닥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부분 짐작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 가능한 고령화 사회의 노후 태풍을 대비하여 오래 함께 할 친구를, 취미를, 노후자금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창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바람 덮쳐올 것 같아 베란다 들락거리며 갈무리 하다말고 미리 예보된 내 인생의 태풍을 생각을 해보았다. 창문 덜컹거리기 시작한 노후가 다 되어서가 아니라 젊은 날의 한 자락을 미리 저축할 줄 아는 지혜, 태풍의 중심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함께 버텨낼 지원군들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미리 예보된 그 바람 막을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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