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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기다리기만 하다가 다 죽을라

 

실업자 수가 7개월째 100만 명을 넘는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리고, 비정규직들도 계약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직행이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다. 경제상황이 이런데도 소득주도성장의 정책기조는 그대로 밀고 나갈 태세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그리고 당정청 모두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 최근 ‘일자리 쇼크’는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전 정부에 엉뚱한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경제가 좀 더 좋아지면 정부가 약속한 다음 해인 2021년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9년이 8350원이니까 2년 사이에 1650원을 더 올리면 되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였던 김진표 의원도 “소득 주도 성장은 속성상 효과가 나올 때까지 3년이 걸리니까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계 당국이나 전문가 분석 등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때문에 고용쇼크가 온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름대로의 지론이겠지만 경제부총리를 지낸 사람의 시각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고용 충격’, ‘양극화 심화’라는 경제성적표에 거듭 송구하다면서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과 가계에 정당한 몫만큼 돌아가게 하는 성장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분배 악화가 최저임금 때문이라는 진단은 성급하다”고 했다. 최근 일자리 등 경제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고용률과 상용 근로자 수 등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윗사람을 농락하여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이지만 억지를 부림으로써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도 있다. 조고가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며 “말입니다”라고 하자 황제 호해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조고의 권력에 겁을 먹은 주위 신하들은 모두 나서 말이라고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만이 정책의 수정을 말한다. “그간 추진한 경제정책도 그간의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 개선,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혼자서는 힘에 부치는 것 같다. 경제정책에 대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사이 실험대상이 된 국민들만 죽어나가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처럼 인구가 적고 땅이 좁은 나라에서는 소득주도형 성장은 맞지 않는다. 4대강 사업의 두 배인 54조 원을 일자리 정책에 뿌려놓았지만 흔적도 없다. 헬기로 물을 뿌리면 마른 사막에서 증발해 버리듯 온데간데 없다. 차라리 54조로 실업자 100만 명에게 5천400만원씩 나눠주는 게 나을뻔했다는 비아냥이 들리는 이유다. 소득주도성장은 친노동정책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최저시급 대폭 인상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서 소비를 늘리고 투자와 생산도 확대한다는 경제의 선순환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 인상분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더 피폐해졌다. 이쯤되면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건물이나 도로를 건설해도 그 과정에서 설계변경을 한다. 정책도 길을 못 찾았으면 변경하는 게 마땅하다.

세금을 많이 낼 기업들의 경쟁력을 지원하고,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선순환 시키는 게 자유경제논리다. 지배구조나 상속 등의 과정에서 문제는 있다지만 삼성과 LG, 현대같은 기업이 자꾸 해외로 이전하고 또 괴롭히면 경쟁상대국들만 좋아진다. 인구 5천만의 우리나라는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에 한계가 있다. 경제 전문가들 진단도 다르지 않다. 불과 3~4년 만에 최저임금이 2배로 오르는 현실에서 지원금 등 미봉책만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을 되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다 죽는다.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조속히 경제정책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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