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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드가의 목욕하는 여인 그림

 

1886년에 열린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인상파 전시에서 드가는 무희들이나 오페라 가수들이 아닌 목욕을 하고 있는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출품했다. 평론가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샀던 예전의 인상파전과는 달리 이제 관객들은 기대와 호의의 시선으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은 고작 열 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 열 작품 중에는 쇠라의 ‘그랑 자드섬의 일요일 오후’와 같이 전혀 새로운 시도를 했던 대작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주목과 호평을 받은 작품들은 단연 드가의 목욕하는 여인 연작들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무렵 대부분 인지도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예술적 노선들은 갈렸고 화가끼리의 반목도 잦아졌다. 대쪽 같은 성격에 냉혹하다는 말까지 들었던 드가가 어느 정도 트러블 메이커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짐작 가능하다. 한편 그의 가슴 속에는 깊은 고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그의 작품에서는 화려하고 생기 있는 도시의 모습보다는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이 더 많이 등장하였으며, 화려한 공연자들보다는 목욕을 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 주변의 여인들이 더 자주 등장한다.

1886년 작 ‘얕은 목욕통에서 목욕하는 여자’에서 웅크린 자세로 머리를 풀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목욕통이 어찌나 얕은지 이 가련한 여인의 나체는 작가에 의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파스텔의 두터운 칠이 여인의 어깨 쪽으로 밝은 빛을 드리우고 있으며, 그 아래로 굴곡진 어깨뼈와 등줄기를 드러내고 있다. 여인의 등에 드리운 빛과 어둠을 따라 작가의 고독한 심정도 비쳐진다. 차갑고 이지적인 면이 강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감성이 짙게 베어나고 있다.

그래도 드가 특유의 시선은 완전히 놓지 않고 있어서, 그는 이 웅크린 여인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듯 바라보고 있으며, 여인의 위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의해 작가와 여인 사이는 가로막힌다. 화면의 오른쪽을 절단하며 위치하고 있는 이 테이블 위에는 빗과 주전자, 각종 소품들이 위태롭게 앉아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인간애로 가득했던 고흐는 이마저도 용납할 수 없었는지, 성적으로 무능하고 무감각한 작가만이 그릴 수 있는 잔혹한 그림이라며 드가의 목욕하는 여인 연작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기록된 바는 없으나, 드가 역시 속으로 고흐의 작품에 대하여 만만찮은 혹평을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동료 화가들과 많이 다투었을 뿐만 아니라, 고흐와는 성향이 정반대였던 드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열정이, 화면 전체를 소용돌이치게 할 정도로 꿈틀대는 터치와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열정이 그보다 못하거나 없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열정은 최대한 간접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냉정하게 다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여인을 향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좇다 보면 우리는 그의 복잡한 심연에 공감하게 된다. 웅크린 여인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시선이야 분명 잔혹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작가는 무작정 그 여인을 자신의 의도대로만 다루려거나 쉬이 왜곡하려하지는 않는다. 그는 대상을 훼손하지 않고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작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고흐의 평판이야 어쨌든 이제 드가의 작품들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고, 적지 않은 돈에 팔렸으며, 작가는 아주 넉넉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관계로부터 고립되어만 갔다. 가족들의 돌봄을 받기 위해 시골로 이사 한 이후로 외로움은 커져만 갔으며, 항상 도시생활로 돌아가기를 고대했지만 악화되는 건강으로 그것은 쉬지 않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주변의 평범한 여인들이 많이 등장했던 데에는 그가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한편 그는 새로운 조각 작품에 몇 달씩 매달리느라 시골을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것은 나름 즐거운 작업이어서, 드가는 이에 몰입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이 시기 그의 회화 작품들은 묵직하게 농익어 가고 있었지만, 조소 작업에서는 치밀하고 예리한 작가의 성향이 다시 제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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