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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욕망의 언어와 침묵의 언어

 

 

 

“내 이름은 오지만디어스, 왕중왕이로다.” 퍼시 버시 셸리 ‘오지만디어스’

인간은 욕망의 화신인가? 사방에서 무도한 욕망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의 파렴치한 권력욕의 언어, 지성을 가장한 비열한 명예욕의 언어 등이 진실하고 소박한 삶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욕망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한과 영원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아이러니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권력의 불멸성을 기대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반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어스, 왕중왕이로다./ 내 업적을 보라, 너 강력한 자여,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저 거대한/ 파편 부스러기 주변에는, 평평한 모래사막이/ 끝없이 헐벗은 채 멀리 펼쳐져 있다.(‘오지만디어스’)

자칭 ‘왕중왕’은 기원전 13세기의 태양왕, 람세스 2세로 그리스어 왕명이 오지만디어스다. 람세스 2세는 60년 이상의 긴 재위기간 동안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영원불멸을 꿈꾸며 자신의 조상(彫像)을 이집트 구석구석에 남긴 전제군주이다. 위에 인용한 첫 2행은 사막에 부서져 나뒹구는 조상의 받침대에 묘비명처럼 씌어 있는 파라오의 명령이다. 자신의 업적 앞에서 ‘절망하라’고 외치던 왕중왕의 오만한 명령이 폐허더미 속에 묻혀 이제 거꾸로 그의 꿈과 오만을 조롱하면서 그를 절망시키고 있다. 파편화된 조상은 인간 오만의 기념비가 되어 권력이 얼마나 무상하며 욕망의 언어가 얼마나 공허하고 왜곡된 것인가를 아이러니를 통해 보여준다.

며칠 전 한국화가 송수련 작가의 기획초대전을 보게 되었다. 한지에 먹이 전부인 작품들을 감싸고 있는 고요에 시선이 머물렀다. 잠시 집중해보니 텅 빈 화폭이 우주적 의미로 가득 차오르면서 내적 본질을 향하는 작가의 깊은 사색이 느껴졌다. 하얀 공간에 먹으로 점과 선을 그렸을 뿐인데 그 점과 선이 침묵의 언어를 통해 강력한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내적 시선-달에 닮다’라는 제목이 달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움과 채움의 역설이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달은 사실 이울고 차는 과정을 통해 생동하는 삶의 역사와 그 모든 층위를 응축하고 있다. 그처럼 웃음과 울음, 번뇌와 환희로 가득 찬 삶이 단순한 점과 무심한 선으로 응결되는 순간, 공(空)이 만(滿)이 된다는,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선(禪)적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작가의 내적 시선이 달을 닮은 이유이다.

어떻게 먹이 이렇게 신비하고 은은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 여쭈었더니 먹이 참 의미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한지 뒷면에 몇 번이고 덧칠을 해 그것이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쓴다고 했다. 순간 고대 희랍에서 양피지에 거듭 다시 쓰는 펠림프세스트(palimpsest) 방식이 떠오르면서 뒷면에 거듭 덧칠을 가하는 예술과정이 역설적으로 깨달음을 향한 작가의 마음 비우기 수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드레 지드 역시 ‘배덕자’에서 주인공 미셸의 입을 빌려 나중에 쓰인 글씨 밑에 이보다 훨씬 귀중하고 오래된 원문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말한 바 있다. 그러면 그 숨겨져 있던 원문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것을 읽기 위해서는 나중의 글을 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수련 작가 역시 숨겨져 있던 원문이자 최초의 세계인 영혼의 본질에 이르기 위해 덧칠을 하면서 동시에 세속의 더러운 더께를 거두어내고자 했을 것이다. 덧칠하면서 벗겨내는, 이른바 채우면서 비우는 역설의 과정이다. 비어 있는 작은 공간, 희미한 점과 선만이 존재하는 최초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알 수 없는 침묵의 언어를 통해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만나는 축복의 순간을 맛본다. 주위에는 고요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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