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 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얼마 전에 가족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이 시를 다시 읽었다. 화자 역시 형의 죽음 때문에 많이 시달렸다는 오래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벌초하러 가면 아버지가 낙엽송 밭으로 들어가 눈이 벌개져서 나오셨는데 그곳이 형 무덤이구나 생각했어요.”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남은 가족의 큰 슬픔을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오랫동안 그 죽음에 대해 말하는 건 무언의 금기였을 것이다.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왼쪽에 갖다 놓는 거야” 죽음 후에 나를 본다. 그리고 이렇듯 담담하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시가 아니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잠재의식에 각인된 죽음이라는 공포는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 볼 수 없는 단 하나의 길, 그 길이 죽음의 길인데 우리 모두는 지금 그 길을 가기 위해 사는 것이다. /이채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