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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동북공심돈의 역할

 

 

 

수원화성의 설계에 관여한 사람은 발주자인 정조, 기본설계자인 정약용, 수원유수인 조심태 그리고 현장 감독인 이유경 등이다. 이 중 이유경은 오랜 시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노력한 진정한 공로자라 할 수 있다.

수원화성의 자랑인 공심돈의 설계는 정약용이 아닌 이유경의 강한 의지로 추진된 것이다. 천재 정약용이 배제한 공심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세 개의 공심돈은 시간차이를 두고 만들어지는데, 이유경의 강한 추천으로 정조는 얼떨결에 승낙하였지만, 공심돈이 생각보다는 약한 시설이라는 것을 공사도중 알게 된다. 이에 정조는 이유경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1796년 4월12일 금군별장으로 전출시킨다. 하지만 수원화성의 실제 일꾼이 빠져 현장이 잘 돌아가지 못하자, 수원유수 조심태는 거듭하여 상소를 올리고 정조는 할 수 없이 그를 6월24일 복직시킨다. 동북공심돈의 준공은 7월19일로 이유경이 복직한 후 25일 만에 이루어졌기에 이유경은 동북공심돈의 공사도중에 복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복공심돈 설계는 누가 했을까? 추정해 보자.

첫째, 이유경이 설계자로 볼 가능성에서 3개의 공심돈이 점차 원형으로 변하고 있는 디자인 개념이 계속 적용되고 있어 금군별장으로 가기 이전이나 금군별장으로 근무하면서 설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공심돈의 능력을 잘못 인지하고 비합리적인 공심돈을 만들어서 쫓겨났는데 설계를 그에게 계속 맡겼다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 다산이 설계자일 가능성을 본다면 동북공심돈은 이전에 만든 남·서북공심돈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또 공심돈을 성곽에서 성안으로 위치변경 한 것과 내부 동선을 사다리 대신 계단으로 처리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방안으로 같은 설계자가 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필자(설계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동북공심돈 설계자는 다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동북공심돈이 왜 이전의 공심돈보다 뛰어난 시설인지 살펴보자. 전쟁역사를 보면 성곽의 높이는 무기의 발달로 점점 낮아졌으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방어시설은 아예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심돈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명나라 말기로 당시 포(砲)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 높은 공심돈이 방어시설로 적합하였지만, 그로부터 200년 이상 지난 화성축성시기에는 포(砲)가 발달되어 좁고 높은 공심돈은 좋은 성곽시설이 아니므로 다산은 공심돈을 배제하였다.

서북공심돈을 만들고 공심돈의 효능에 대한 알게 된 정조는 더 이상 공심돈을 만들지 않아야 했지만, 동북공심돈을 추진하는 데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병자호란 시기 남한산성 봉암성에서 청나라 군인이 행궁을 향해 홍의포(紅夷砲)를 발사하는 바람에 항복한 아픔을 겪은 적이 있었으므로 성곽 밖에 높은 지점은 반드이 선점해야 하였다. 팔달산 본성에서 남쪽에 서남각루(화양루)와 이를 연결한 용도(用道)가 있는 이유가 바로 남한산성의 교훈이다. 동북공심돈의 밖에 있는 선암산 정상이 성곽 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암산 정상까지도 용도를 설치하여야 했다. 그러나 유천성(柳川城)의 이름처럼 나뭇잎모양의 성곽을 만들어야 하는 선암산 정상에 용도를 설치한다면 또 하나의 잎자루가 생겨 모양을 흩트리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았다. 정조는 용도 대신 강력한 공격시설인 공심돈을 대안으로 채택한다.

남공심돈은 남수문과 남암문을 보호하고 서북공심돈은 화서문을 보호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동복공심돈은 방어가 아닌 공격 즉, 선암산 정상을 공격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동북공심돈과 선암산 정상은 1번국도로 인해 둘은 갈라져 있어서인지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면한 채 서있다. 화성 창건당시 선암산 정상은 적군이 점령하기 어렵게 하였을 것이고 또 점령을 하였더라도 성곽을 향해 공격이 쉽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공심돈 중 가장 강력한 동북공심돈의 위상이 다시 정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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