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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고봉밥 사랑

 

 

 

살짝 덜 익은 김치 한 접시, 고명으로 치장한 잡채, 말쑥하게 구워진 소고기 몇 점. 따끈따끈한 미역국에 마지막으로 병아리 콩 다닥다닥 엉겨 붙은 찰진 고봉밥이 차려진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맛있게 먹고 오늘도 행복하자”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아침밥을 오늘은 이것저것 먹어보며 ‘맛있다, 맛있다’ 고봉밥을 받아 안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저 아이, 얼굴이 환하다. 어쩌면 내 고봉밥이 피워 올리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고봉밥은 숙성된 사랑이다. 육남매가 북적대던 어린 시절, 특별히 내가 대접받을 수 있었던 날은 일 년에 딱 하루, 생일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생일 축하한다며 시끌벅적 시작되던 아침, 그 특별한 생일상 위에 당당하게 앉아 있던 나만을 위한 고봉밥 한 그릇. 아침, 점심, 저녁까지 뽀얗게 찰진 고봉밥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독차지한 그 하루만큼의 따끈따끈한 사랑. 그것은 지금까지도 푹 익어 숙성된 어머니가 물려주신 고봉밥 한 그릇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밥공기 안의 양보다 밥공기 밖의 양이 더 많기도 한 고봉밥은 때로 숱한 사람들에게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딱히 먹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에겐 불룩하게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한 그릇은 최고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찬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무생채, 오이무침, 청양고추 듬성듬성 띄어진 매콤한 된장찌개 푹푹 퍼 담아 양푼이 가득 고봉밥 쏟아 붓고 비벼먹는 맛이라니. 그 고봉밥으로 채워진 힘은 또 한 번 논밭으로 흩뿌려지고 다시 고봉밥으로 돌아오는 진솔한 순환. 고봉밥은 그렇게 거짓 없는 진솔한 사랑이기도 했다.

“다이어트 밥그릇이야. 아이디어가 너무 괜찮지?”

며칠 전 친구가 선물이라며 내 민 밥공기 세트. 밥그릇이며 국그릇의 배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다. 밥을 서너 숟가락만 담아도 채워질 정도로 작고 희한한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밥은 그야말로 적게 먹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듯하다. 식당에서 내어놓은 살살 풀어 담은 공기밥 한 그릇조차, 그대로 남기는 사람이 많을 때가 있다. 너도 나도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멀리해야 한다, 탄수화물 중독이 건강을 해친다는 등의 염려로 단백질, 기타 등등에게서 밀려나기 시작한 밥. 다양한 먹거리, 초를 다투며 변해가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밥의 위치 또한 달라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우리 밥상의 중심에 밥이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까지 엄마 사랑 조금 조금씩 나누어 먹을게요.”

생일상으로 받은 고봉밥 그릇을 갈무리하며 환하게 웃어주는 딸아이의 마음에도 이미 뿌리 내린 고봉밥 사랑. 그건 부담이 되는 탄수화물도 아니고 평범한 한 그릇의 밥도 아닌 깊은 뿌리로부터 이어져 온 따끈따끈한 사랑인 것이다. 뿌리가 튼튼한 사랑, 두고두고 딸아이가 또 이어갈 그 고봉밥 사랑, 그 사랑으로 오늘 출근길이 한없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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