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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시력이 나빠진 노년의 드가가 행했던 실험

 

 

 

일생동안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던 드가는 1889년에서 1992년 사이 갑자기 수십 점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눈을 쉬게 하려고 떠난 기차 여행길에서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모로코, 부르고뉴, 볼로냐 등을 여행했으며, 풍경화들은 모두 파스텔로 그려졌다. 작가의 시력이 너무나 많이 손상되어 유화작업이 어렵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대상의 정확한 묘사를 중요하게 여겼던 그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산천들은 완만하게 그려졌고 둥글둥글한 덩어리처럼 포현되었으며, 그러면서도 색은 더욱더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 시력의 손상은 화가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시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가는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전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세잔은 엑상 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며 실험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저 사실적인 회화보다는 대상으로부터 그 안에 숨어있는 더욱 견고한 그 무엇을 끄집어내길 원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목표는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회화적 노선은 전혀 달랐다고 봐야 맞는데, 세잔의 경우 좀 더 일찍부터,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형태의 변형을 시도했다면 드가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말년까지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상회화와 현대미술의 길을 튼 선구자로서 우리는 주저 없이 세잔을 지목하지만, 드가에게는 아주 결정적이고 중심적인 역할까지는 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기 드가의 시도는 작가의 실험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도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측면도 있었다. 심각한 시력 손상이 있었고, 손과 몸을 쓰기도 힘들어졌었으며, 여행길이었기 때문에 모델을 구해 인물을 그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기차여행길에서 남긴 이태리, 스페인 일대의 풍경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들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못지않게 새로운 회화의 경향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추상회화를 향하여 좀 더 큰 보폭으로 향해갔던 칸딘스키나 몬드리안과 같은 추상화가들은 작가의 주관적인 인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형태를 흉측하게 뭉그러뜨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선배 화가들의 공로덕분에, 그리고 세잔의 끈질긴 실험이 남긴 유산덕분에, 그들보다 더욱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회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들 역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맞나 틀리나, 혹은 대상을 변형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로 고심했지만, 선배 작가들보다는 훨씬 더 진보적인 출발선에서 그러한 문제들을 다룰 수가 있었다. 우리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과 같은 후대 작가들의 경향을 일컬어 차가운 추상, 혹은 뜨거운 추상이라 명명하곤 한다. 작가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흥에서 비롯된 것이 뜨거운 추상이라면, 좀 더 이성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차가운 추상이다. 그것들은 근대회화의 장을 여는 놀라운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이 때부터 상당수의 관객들이 작품으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보고도 뭘 뜻하는지 모르겠는 것들로 온통 화면이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드가로 돌아오자. 냉혈안이라고 오해를 샀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물론 타인에게도 엄격했던 그가 이제 나이가 들어 눈도 나빠지고 손에 힘도 빠졌다. 티격태격 했던 동료 마네는 저 세상으로 갔고, 그의 곁에는 이제 많은 이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걷잡을 수 없는 쓸쓸함이 그의 생을 짓눌렀다. 육십을 바라보고 있던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붙들어가며 완성했던 이 시기 작품들은 화가의 전 인생을 고스란히 대가로 치르며 완성한 것들이었다. 그 대가의 무게 때문에 그러한 시도들이 단지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을 정도다. 드가가 세잔이나 마네처럼 근대 회화로 가는 길을 열었던 혁신가로서 지목되지는 못할지라도, 그가 말년에 완성한 풍경화들은 추상회화를 향해 보드라운 지지를 보냄으로써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 완만하고 반짝이는 능선들은 그전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한 추상회화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면, 드가의 풍경화를 먼저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왜 추상이란 것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인간적인 설명이 거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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