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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발효되는 그늘

 

 

 

발효되는 그늘

/김휼

떫고 단단한 불화를 그늘에 들여놓네

말랑말랑 분이 생겨 단맛을 더할 무렵

그늘을 즐겨 먹던 어머니는 그늘이 되었네

말이 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숨 같은 그늘로

한없이 어루만져주고 싶은

보드라운 것들이 몸을 맡겼네

다툼 없이 이룩해 놓은 살가운 영역으로

정처가 없는 구름도 제 몸을 부려왔네

그런 날은 괴이한 슬픔이 안쪽으로 고였네

잎이 넓어질수록 깊어지는 그늘에

어머니는 젖어 있던 웃음을 내어 말렸네

젖무덤 같기도 하였던 당신의 그늘

눈을 뜨니 그늘 밖에 내가 있네

 

 

 

 

‘떫고 단단한 불화’를 ‘말랑말랑 분이 생겨 단맛’을 더해주는 것으로 발효시켜주는 그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부끄럽다. 그런데 그런 ‘그늘을 즐겨 먹던’ 분이 바로 ‘어머니’라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그늘은 ‘말이 없는 자리에서 나오는 숨 같은’ 것이었고 그 그늘에는 ‘한없이 어루만져주고 싶은 보드라운 것들이 몸을 맡겼’다. ‘정처가 없는 구름도 제 몸을 부려’오는 그늘은 어머니가 ‘다툼 없이 이룩해 놓은 살가운 영역’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늘 웃으셨지만 그 웃음에 물기가 가실 날이 없어 어머니의 웃음은 늘 젖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웃음을 내어 말’리면서 ‘당신의 그늘’로 식구들을 품으셨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눈을 뜨니 그늘 밖에 내가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어쩌랴. 나의 그늘은 ‘떫고 단단한 불화’를 발효시키기에는 어머니의 넓고 깊은 그늘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좁고 얕기 때문이다. 뜬 눈을 다시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손바닥만 한 나의 그늘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몹시 부끄러워한다. /이종섶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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