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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어려운 수박

 

 

 

 

 

일찍부터 시작된 더위가 연일 40도에 가까이 오르며 맹위를 떨친 여름이다. 그래서 종종 몸을 일으켜 가까운 체육관을 찾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보면 동호인클럽에서 수박을 시원하게 준비해 주기도 한다.

냉장고에서 속까지 골고루 잘 냉장된 시원한 수박을 썰어 한입 베어물면 땀으로 인해 생긴 갈증과 한껏 오른 열기를 식히는 데에 얼음물보다 더 빠르게 해갈이 된다. 수박은 여름을 떠올리게 하고 여름이면 적어도 한 덩이 이상은 소비하게 되는 과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수박이 내겐 어려운 과일이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익은 수박을 고르려면 매의 눈으로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엔 꼭지를 보고 싱싱함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수확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판매하는 곳에서 슬그머니 꼭지를 떼버리기도 하여 꼭지로 신선함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박의 진한 초록색 줄의 선명함으로 잘 익은 것을 고를 수 있다는데 그 기준도 불분명한데다 눈도 허술하여 선명함을 기준삼기가 또한 어렵다. 다음엔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은 수박이란다. 이런저런 수박 고르는 상식을 다 동원해봐도 그것이 그것 같고 제대로 고르기가 쉽지 않아 집에 갖고 와서 반을 갈라봐야 그 속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려움의 원인이다.

더욱이 수박의 무게 때문에 사서 들고 오기도 힘들고 혹, 속이 상했거나 만족스럽지 않다고 반품하러 들고 다시 가기는 더욱이 힘들다. 어쨌든 어렵고 힘든 결정체 수박이다.

이런 어렵고 힘든 선택과 결정, 보관, 반품의 과정 때문에 나처럼 눈이 어두운 소비자는 자신의 어두운 눈을 인정하지 못해 늘 투덜대거나 자책하고 선뜻 사기가 어려운 상품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유통업자는 대량의 수박을 구입하여 판매하고 그 이전에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공산품처럼 하나하나 검수하여 제대로 골라내는 과정을 거치기는 힘들 것이고 농부인들 좋은 상품을 출하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수박을 보며 얼핏 단단한 겉을 하고 속은 곪았어도 형태는 유지되는 단체와 유사함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뜻과 목적을 함께하며 시작하여 사회적인 관계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외형을 불려나가다 어느 순간엔가 원래의 목적과 이상이 더 많은 사람이 모여 각자의 생각들을 내기 시작하면서 삐걱이고 불협화음을 내며 혼란과 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본다.

사람의 일이고 원래의 목적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보니 부족한 부분에 경계를 하는 것이다.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되면 내부는 또 다른 의견의 소집단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되도록 모르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나 수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속이 물러서 저절로 내려앉기까지 겉을 멀쩡하게 유지하는 현상이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보수가 어디에 땜질 하는건지 진보가 새로 발견된 보물이름인지 알지 못하는 나처럼 우매한 이는 멀쩡한 겉에 속아 별일없어 보이는 하루의 평화에 안도하며 속이 무르도록 진열해 놓지만 않는다면 수박 한덩이쯤은 기분좋게 사 먹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만 유지되기를 바란다.

시끄러운 뉴스는 외면한 덕분에 그저 단단해 보이는 억지 외양이라도 우리 세금을 걷워가는 우리나라가 감사하고 우리가 속한 단체가 주는 외양 덕분에 오늘도 무너지지만 마라하고 바란다.

하지만 무엇과 견주어도 뼈없는 속살이 위태롭기는 하나 단연 독보적인 외양으로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은 뜨거운 여름을 딛고 우리에게 와서 시원한 식감과 단맛으로 그 힘든 더위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고 지친 몸에 잠시라도 해갈의 기쁨을 안긴다. 어려운 수박에게 가진 유감따위는 애초 그 것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 내게 있었으니 그 전에 잘 고를 준비가 된 혜안을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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